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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함께하는 NIE] 믿지 않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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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상반기부터 인터넷에서 가수 타블로를 둘러싼 학력 논란이 이어졌다. 사진은 스탠퍼드대학에서 타블로의 학력을 인증한 자료들. [중앙포토]

가수 타블로(30·본명 이선웅)는 올해 인터넷 세상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인물 중 하나다. 미국 스탠퍼드대 석사 출신이라는 그의 학력이 인터넷 누리꾼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누리꾼들은 타블로의 학력이 허위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 등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지속적으로 ‘타블로 학력 위조설’을 퍼뜨렸다. 심지어 타블로가 증거로 제시한 각종 증명서에 대해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죄 또는 사문서부정행위죄’로 검찰과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지난 8일 경찰 수사를 통해 타블로의 학력이 공식 확인돼 1년 가까이 온라인을 들끓게 했던 학력 위조 의혹이 일단락됐다. 이에 ‘상진세’는 공식 사과문을 통해 “싫든 좋든 공권력에서 검증하고 발표한 이상 (타블로의 학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인터넷 카페를 자진 폐쇄했다. ‘타진요’는 포털 사이트에 의해 카페를 폐쇄당한 뒤 ‘타진요 2’를 개설해 활동 중이다. 경찰의 공식 발표로도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타블로 사건은 한 개인에게만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아니다. 이 사건 외에 검증받지 못한 루머는 쉽게 믿는 데 반해 정부와 전문가의 말은 믿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해 왔다.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공적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준 예”라고 분석한다. 도무지 ‘믿지 않는 사회’가 된 원인과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불신과 갈등

우리나라는 사회갈등지수가 매우 높고 사회적 신뢰도는 낮은 국가에 속한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삼성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중 터키·폴란드·슬로바키아에 이어 넷째로 높았다.

 불신과 갈등의 원인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인사청문회에 오른 고위층 인사들은 도덕성 문제로 줄줄이 낙마하고, 몇몇 대학교수는 학력 위조가 밝혀져 강단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뢰를 무너뜨리는 후진국형 범죄가 사회 전반에 자리하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범죄 중 사기나 횡령, 배임 등 신뢰 범죄가 매년 평균 20만 건씩 발생한다. 이는 전체 형법 위반 사건의 26%가 넘는 수치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심각하다. 2007년 기준으로 법정이나 국회 등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장소에서 거짓말을 하는 위증죄는 일본의 171배, 없는 일을 꾸며 남을 고소·고발하는 무고 사건은 217배다. 일본 인구가 우리나라의 2.5배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위증죄는 427배, 무고죄는 542배인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 신뢰 수준이 낮은 이유를 근현대사에서 찾았다. 한국전쟁 이후 고속 경제 성장을 거쳐 민주화 달성 과정에서 국민이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믿지 않는 태도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진정한 선진국 되려면 신뢰사회 구축해야

미국의 정치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중국·인도와 함께 ‘저신뢰사회’로 표현했다. 그는 “신뢰는 곧 사회적 자본”이라며 “국가의 번영과 경쟁력은 신뢰의 수준으로 좌우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저신뢰사회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물지 않아도 될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성장과 번영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중앙대 신동영(사회학) 교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경제 성장만으로도 가능했다”며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불신을 버리고 신뢰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는 어지간한 신뢰성 결여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시점에는 신뢰가 새로운 화두로 다가왔다는 설명이다.


해볼 만한 NIE 활동

초등학생에게 사회 갈등과 불신은 쉬운 주제가 아니다.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연관 지어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 좋다. 영화 ‘라이어 라이어’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소송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족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 그가 하루 동안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진실만을 말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주요 내용이다. 초등학생 자녀와 영화를 함께 보며 ‘사람들이 거짓말을 왜 하는지’ ‘거짓말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다.

 중학생이라면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다. 앞으로 40년 뒤인 2050년에는 미디어의 범람으로 의미 없는 쓰레기 정보가 넘쳐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사실과 객관성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접했을 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글로 써 보면 된다. ‘타블로 사건’ 기사와 연관 지어 신문 일기를 써도 좋다.

 고등학생들은 시각을 달리해 ‘갈등의 가치’에 대해 논술문을 작성하거나 ‘신뢰사회가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 정리해 두면 도움이 된다. 갈등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회 발전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갈등을 통해 사회가 발전했던 사건들을 찾아 이를 예로 들어 가며 갈등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해 논술문을 작성해 볼 수 있다. 또 신문 기사 등을 참조해 신뢰사회에 대해 직접 정의를 내려 보고 구성원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정리해 두면 논·구술시험에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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