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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의 저 벼락 같은 눈빛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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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금릉 김현철씨가 그린 만해 한용운 대선사의 전신 초상화. 눈을 중심으로 한 얼굴에 집중해 신체 표현은 간결 단순하게 처리했다. 만해가 평생 고개를 바로 세우지 못한 사실에 저항정신을 접목해 진영을 완성했다. 원래 크기는 85X51㎝이나 지면 사정으로 가로를 길게 편집했다. [금릉 김현철 제공]

눈빛이 형형하다. 안광(眼光)이 종이의 뒤쪽을 뚫어버릴 듯하다. 만해 한용운(1879~1944) 대선사의 진영(眞影)은 사진이 쫓아올 수 없는 초상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형상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전신(傳神)은 외모를 본떠 베낄 뿐 아니라 내면의 정신성까지 그려낸다. 사람의 속을 샅샅이 살펴 밖으로 표출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의 세계는 깊고도 오묘해서 쉽게 입문할 수 없는 가시밭길과 같다.

 만해의 전신 초상화를 그린 금릉 김현철(52)씨는 2년 전 연 ‘초상- 그 전신의 세계(1)’에서 이미 전통을 이어갈 뚝심을 자랑했다. 얇은 비단에 가는 붓으로 수만 번, 수십 만 번 투명한 듯 맑은 채색의 붓질을 해 완성하는 전신 초상화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함은 물론, 세월과 세상을 잊고 염불하는 마음으로 전력해야 하는 화목(畵目)이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하며 진경산수화풍과 초상화풍을 갈고 닦은 그의 25년 내공이 이제 저절로 빛을 발한다.

 27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초상-그 전신의 세계(2)’전은 그가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찾은 진영의 현재다. 이름은 널리 전해지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식 초상화가 정리되지 않은 공인들을 모셨다.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조선말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끈 경허 선사(1849~1912), 혜월 선사(1861~1937), 향곡 선사 (1912~78) 등이 제 얼굴을 찾았다. 한국화가 월전 장우성(1912~2005), 서예가 일중 김충현(1921~2006) 등 근래 타계한 예술가의 초상도 그 예술혼을 보는 듯 쾌하다.

 금릉은 만해의 진영 제작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발굴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919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로 잡혀 들어갔을 때 촬영한 옥중 사진,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알리는 민중대회 개최를 준비하다 수감돼 찍은 사진 등을 관찰하니 만해가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더라는 것이다.

 만해 일대기에는 1911년 피격 당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총알 제거 수술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때 후유증으로 평생 고개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금릉은 이 사실에다가 만해의 강인한 저항정신을 중첩시켜 얼굴이 다소 비뚤어진 자세로 초상화를 그렸다. 신체 표현을 최대한 절제한 것도 만해의 빛나는 얼굴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김현철은 조선시대 초상화 기법의 온전한 계승, 모사를 통해 이를 동시대인의 초상 작업으로 끌어당긴다. 정교하고 담백하며, 깔끔하고 차분한 정신이 감도는 그의 초상화에서 품격을 느꼈는데 그것은 단지 그림의 문제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이의 품성이 감지되는 차원이었다”고 평했다.

 금릉은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의 텍스트이니 그냥 보지 말고 들여다보며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낸 전신 초상화는 한 인간의 일생이 담겨있는 ‘그림으로 그린 전기(傳記)‘라는 얘기다. 그는 “서양화로 제작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 영정을 우리 전통 초상기법으로 제작해볼 생각이었지만 역부족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상 시기상조인 듯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02-730-1144.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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