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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 사격 … 고문 묵인 … 민간인 참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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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미국 군·정보기관의 기밀문서를 폭로한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가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이번엔 이라크전의 불편한 진실이 폭로됐다. 미군의 극비 문서를 잇따라 폭로해 유명해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의해서다. 미국 뉴욕 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현지시간) 위키리크스로부터 받은 39만1832건의 기밀문서 내용을 1면 톱 뉴스로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 등 유럽 언론도 이를 주요 뉴스로 전했다. 이 문서는 2004~2009년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미군의 사건·사고 보고나 미 정보당국의 현장 보고서를 담고 있다. NYT는 “이번 문서엔 경천동지할 새 내용은 없지만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번 폭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라크전에선 유독 민간인 희생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10만9000명으로 추산된 사망자 중 3분의 2인 6만6000여 명이 민간인이었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민간인 사망자만 1만50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6년 12월은 최악의 달이었다. 조직적인 ‘분파 청소’로 38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에 의한 오인 사격도 잦았다. 2005년 6월 14일 라마디 지역 해병대 검문소에선 미군의 정지 신호를 보지 못한 차량에 무차별 총격이 가해졌다. 이 사고로 두 명의 어린이 등 민간인 7명이 사망했다.

 문서는 이라크 군경에 의해 자행된 고문과 잔혹 행위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이라크군 장교가 수감자의 손가락을 자른 뒤 염산을 부었다는 기록도 있다. 구타·채찍질·전기 및 물 고문과 같은 학대 행위는 수백 건이 보고됐다. 한 방에 95명의 수감자가 눈이 가려진 상태로 책상다리를 한 채 갇혀 있는 모습이 미군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은 이 행위를 못 본 척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 중에선 이란 혁명수비대의 핵심부대인 쿠드스(Quds)군이 이라크 반군 세력을 저격수로 훈련시키고 이라크 관리 암살을 지원했다는 보고도 나왔다. 이란 정보국은 이라크 반군에 테러용 폭발물과 소총·지대공 미사일까지 제공했다. 미군조차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 인사들이 이라크 정부에서 세력을 확대해 이란의 입김이 강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번 폭로는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유엔 고문 특별보고관인 만프레드 노박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 주둔 미군의 인권 남용 사례 개입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과 미국 인권단체도 미국 정부의 조사를 요구했다. 지난 3월 총선 후 7개월이 넘도록 새 정부를 출범시키지 못한 이라크 정국도 악화하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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