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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드라마 ‘마오안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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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02면

마오안잉(毛岸英·모안영)은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장남이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에 자원입대했다.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의 러시아어 통역관이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미군 공습으로 전사한다. 28세 때다.

중국 국영 CC-TV가 그의 삶을 조명했다. 34부 대하드라마 ‘마오안잉’을 내놓았다. 공산 중국 건국자인 아버지는 풍운의 삶을 살았다. 아들의 일생도 시련과 곡절이었다. 10월 25일은 중국의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일. 중국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 지원) 전쟁이다.

드라마 첫 편이 20일 방영됐다. 첫 장면은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烈士陵園)’이다. 중공군 전사자 묘지다. 평양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져 있다. 그곳에 그의 묘가 있다. 화면은 묘소를 찾는 늙은 여성을 클로즈업한다. 마오안잉의 부인 류쓰치(劉思齊·유사제)다. 직접 출연했다. 남편의 흉상(胸像)을 쓰다듬는 류쓰치. 나이 78세다. 결혼 1년 뒤 남편을 잃었다. 그의 회상이 이어진다. “조국은 나날이 강대해지고, 인민들은 부유해지는데…60년 전 당신은 작별인사도 없이 떠났다. 나는 매일 당신을 보고 싶었다….” 추모의 독백은 미망(未亡)의 한을 담았다.

마오쩌둥은 아들을 그곳에 묻으라고 지시했다. “다른 전사자와 같은 대우를 해라. 시신을 중국으로 옮기지 말라.” 그 죽음은 북한·중국의 혈맹 관계를 상징한다. 묘소는 그 인연을 강렬하게 재생한다.

첫 화면은 다른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지난해 10월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마오안잉 묘소도 참배했다. “조국은 강대하고 인민은 행복해졌습니다.” 그 말은 마오안잉 부인의 독백과 같다. 그 추도식은 대규모 공개 행사였다. 북·중 관계의 재구축 시위였다. 이명박 정권에서 한·미 동맹이 강화될 무렵이다. 그 이후 천안함 사건, 김정은 등장 과정에서 중국의 북한 지원은 대담하고 자극적이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피바다가극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중국 전통극을 각색한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臺)’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조선전선 참전 60돌이 되는 때 중국 동지들의 협조를 받아 가극을 완성한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전통적 우의의 대(代)를 이은 강화’는 북·중 정상회담의 상투적 다짐이다.

북·중 밀월은 새로운 절정기다. 드라마 ‘마오안잉’은 그 흐름을 뒷받침한다. 제작팀은 중난하이(中南海·중남해)의 풍택원(豊澤園·마오쩌둥 옛 거주지)의 촬영허가를 받았다. 드라마 사상 처음이다. 그 드라마는 중국 젊은 세대에게 애국주의를 주입한다. 한반도에 대한 인연과 영향력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킨다.

밀월은 우리에게 부담이다. 그 밀월에도 문제점과 한계가 있다. 북한은 고립무원이다. 김정은 권력 승계에서 중국의 지원은 절대적이다.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면서도 역사적 자존심을 내세운다. 마오쩌둥은 국민당 장제스(蔣介石·장개석)와의 내전 때 고전했다. 김일성은 마오를 지원했다. 북한은 그 사실을 요즘에 내세운다. 김정일의 동북 3성 순방은 그런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그런 결속은 중국의 새로운 리더십에겐 낯설다. 북한의 자존심 관리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게 없으면 구걸로 전락한다.

북한의 대외적 자세는 불량성 돌출과 불확실성이다. 그런 행태에 대한 지속적 지원은 쉽지 않다. 중국의 국제사회 지도국 이미지에 치명상을 준다. 그 한계와 틈새는 우리에게 기회다. 중국을 설득하고 친중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세련되게 운용해야 한다. 북한 리더십에겐 같은 민족 간 교류협력의 장점을 알려야 한다.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지원해줄 나라는 한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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