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종교인을 우주론과 생태학의 땅으로 인도한 새로운 모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9호 19면

지난해 작고한 토머스 베리(왼쪽)와 우주 이야기를 공동 저술한 브라이언 스윔(오른쪽)은 강연과 영상물 제작을 통해 생태우주론을 대중화하는 데 노력해 왔다.

신화·종교·역사·과학을 총칭(總稱)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주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7> 토머스 베리·브라이언 스윔 『우주 이야기』

우주 이야기라는 책을 쓴 사람이 있다. 지난해 작고한 토머스 베리(1914~2009)라는 신부다. 문예지 ‘블룸베리 리뷰(The Bloombury Review)’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100년에 한 번, 인류 가운데 심오한 명료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 토머스 베리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이런 극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리 신부는 문화사학자·생태철학자·생태신학자다. 그는 자신이 만든 ‘geologian(지구학자)’이라는 말로 불리기를 바랐다. 우주 이야기의 공저자인 브라이언 스윔은 수학적 우주론자다. 스윔은 베리 신부의 ‘비후견인(prot<00E9>g<00E9>)’으로 알려졌다. 스윔은 98년 ‘새로운 이야기(New Story)’라고도 불리는 ‘우주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예술가·과학자·생태여성학자·생태학자·종교사상가·교육자들을 위해 국제포럼 EES(Epic of Evolution Society)를 설립했다.

『우주 이야기』를 우리말로 번역한 곳은 대화문화아카데미(www.daemuna.or.kr)다. 대화문화아카데미는 대화모임·연구·교육·출판 활동으로 사회의 인간화, 양극화 해소, 생명을 중시하는 공동문화의 창달을 추구한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89년 베리 신부를 일컬어 “새로운 유형의 생태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도발적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베리는 ‘지구의 환경 위기가 과학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적(靈的)인 위기’라고 파악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영성(靈性)의 쇠퇴가 야기한 인간과 자연의 격리 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테야르 드샤르댕의 영향 받아
베리 신부는 환경운동의 이론적 대부(代父)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친(親)환경적 유년기 교육부터 ‘녹색 건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족적을 남겼다. 특히 노르웨이 철학자 아느 네스, 신학자 매슈 폭스 등 수많은 지도적 신학자와 환경운동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또한 그가 포드햄대학에서 가르친 제자들은 미국 전역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폭스 신부는 그의 업적을 설명하면서 “모든 종교인을 인간중심주의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우주론과 생태학이라는 땅으로 인도한 새로운 모세”라고 말했다. 베리 신부는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 체제는 물론 기업·대학·종교에 깔린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한 데 이어 인류가 생존하려면 이 네 개의 체제가 생명중심주의에 기초한 생태문명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리 신부는 조숙했다. 고향 인근에 있는 초원에서 그는 11세에 ‘계시적인 사건’을 체험한다. 초원을 살리는 것은 선(善), 죽이는 것은 악(惡)이라는 각성이었다. 그는 1934년 예수 고난회에 입회한다. 세속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회에 가입함으로써 ‘천박하게 상업화되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근원적인 의미를 찾기를 바랐다.

베리 신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토마스 아퀴나스(1224~74), 피에르 테야르 드샤르댕(1881~1955),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였다. 베리 신부의 본래 이름은 윌리엄이었는데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본받고자 토머스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그는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을 즐겨 인용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이 우주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고 역설했던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흡수했다. 베리 신부가 수행한 역할은 현대 과학의 성과를 영성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베리 신부는 예수를 진화의 종점으로 이해한 테야르 드샤르댕의 영향을 받았다. 생태신학자인 디아무드 오무쿠 신부는 그를 “드샤르댕의 가장 위대한 제자”로 평가했다. 하지만 베리 신부는 불교(1966)와 인도 종교(1971)를 출간한 동양 종교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런 배경에서 드샤르댕의 사상에서 발견되는 진보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 서구 중심주의, 아시아 종교 수용에 대한 소극적 자세를 비판했다. 베리 신부는 다문화주의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동양 철학과 종교를 대학 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주·지구·인류의 역사를 통합한 역작
‘지구학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는 문화사학자였던 베리 신부에게 사학 방법론을 제공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역사가였던 잠바티스타 비코였다. 비코는 인류 역사를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의 시대로 구분했다. 베리 신부가 인류 역사를 ▶부족 샤머니즘 시대 ▶전통 문명 시대 ▶과학 기술 시대 ▶생태대(Ecozoic Era)로 구분한 것은 비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생태대는 인간과 지구가 상호증진적(mutually-enhancing)인, 즉 상생(相生)적인 관계에 놓이는 시대다. 생태대의 개막은 6500만 년 전 시작돼 지구와 생명을 파괴해온 신생대(Cenozoic Era)의 종언을 의미한다.

생태대가 도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가나 혁명가에게 이론이 있다면 베리 신부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그에겐 ‘이야기’가 곧 이론이다.

우주 이야기에서 베리 신부는 어떻게 ‘이론’을 만들었을까. 융합과 통합을 통해서다. 그는 우주 이야기에서 물리학·생물학·지질학 등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한다. 동시에 그는 ‘과학적 우주론’과 ‘종교적 우주론’을 통합한다. 또한 역사학적 관점에서 보면 베리 신부는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통합한다.

인류에게는 원래 ‘우주 이야기’가 있었다. ‘우주 이야기’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을 줬었다. 그는 인류가 새로운 우주 이야기를 갖게 돼 우주에 새롭게 매혹될 때,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 행위가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래적 ‘우주 이야기’의 원천은 신화와 종교였다. 아이작 뉴턴만 해도 물리학보다는 성서 연구에 더욱 몰두했다. 뉴턴은 우주가 기원 전 4000년에 창조됐다고 계산했다. 현대 과학은 우주가 137억 년 전에 생겼다고 본다. 과연 과학자들은 베리 신부의 ‘우주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을까.

과학과 우주 이야기의 관계 설정에 앞서 따져봐야 할 것은 종교와 우주 이야기의 관계다. 둘 사이의 관계는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 역사적 선례가 있다. 가톨릭 교회에는 동물과 환경의 수호성인인 아시시의 성 프란키스쿠스(1181~1226)를 비롯해 생태신학이나 영성을 추출할 수 있다고 믿는 오랜 전통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경우 교회는 세 번이나 그를 단죄했으나 그는 1323년 성인품에 올랐다. 테야르 드샤르댕의 신학에 대한 교회의 의구심은 아직도 남아 있다.

베리 신부의 경우는 어떤가. 베리 신부의 우주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경계를 사실상 넘어버렸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우주 이야기’가 종파적이라고 본다. ‘그리스도교의 이야기’는 더 이상 지구의 이야기이거나 인류를 위한 통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죄나 삼위일체, 최후 심판은 없어
베리 신부의 우주 이야기는 믿음이 없거나 자신의 믿음에 만족하지 못하는 회의적 신앙인에게는 희망일 수 있다. 반면 뭔가를 ‘잘 믿고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분노를 자아낼 수도 있다. 베리 신부는 92년 “우리는 한 20년간 성경을 덮어버리고 우리 종교의 개념들을 철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궁극적 신비’ ‘신적 존재’ ‘위대한 영’ 등으로 대체했다. 종교의 포커스를 개인 구원에서 지구·우주 구원으로 옮기는 가운데 그가 쓴 우주 이야기에선 원죄나 삼위일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그리스도교적 개념이 낄 자리가 없다. 베리 신부는 자신이 신부라고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또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방식의 인구 억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예컨대 여행할 때마다 아메리카인디언의 지혜가 담긴 저서 검은 고라니는 말한다(Black Elk Speaks)를 가지고 다니면서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의 지혜를 빌리려 했다.

우주 이야기는 한가한 이야기는 아닐까. 전쟁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지구촌에 인간과 지구 간의 관계 정상화를 말하는 영성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베리 신부에 따르면 단연코 그렇지 않다. 베리 신부는 말한다. “인간이 지구와 평화를 이룩하지 않고서는 인간들 사이에도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베리 신부는 또한 환경과 사회정의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