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종교·역사·과학을 총칭(總稱)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주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7> 토머스 베리·브라이언 스윔 『우주 이야기』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89년 베리 신부를 일컬어 “새로운 유형의 생태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도발적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베리는 ‘지구의 환경 위기가 과학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적(靈的)인 위기’라고 파악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영성(靈性)의 쇠퇴가 야기한 인간과 자연의 격리 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테야르 드샤르댕의 영향 받아
베리 신부는 환경운동의 이론적 대부(代父)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친(親)환경적 유년기 교육부터 ‘녹색 건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족적을 남겼다. 특히 노르웨이 철학자 아느 네스, 신학자 매슈 폭스 등 수많은 지도적 신학자와 환경운동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또한 그가 포드햄대학에서 가르친 제자들은 미국 전역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폭스 신부는 그의 업적을 설명하면서 “모든 종교인을 인간중심주의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우주론과 생태학이라는 땅으로 인도한 새로운 모세”라고 말했다. 베리 신부는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 체제는 물론 기업·대학·종교에 깔린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한 데 이어 인류가 생존하려면 이 네 개의 체제가 생명중심주의에 기초한 생태문명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리 신부는 조숙했다. 고향 인근에 있는 초원에서 그는 11세에 ‘계시적인 사건’을 체험한다. 초원을 살리는 것은 선(善), 죽이는 것은 악(惡)이라는 각성이었다. 그는 1934년 예수 고난회에 입회한다. 세속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회에 가입함으로써 ‘천박하게 상업화되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근원적인 의미를 찾기를 바랐다.
베리 신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토마스 아퀴나스(1224~74), 피에르 테야르 드샤르댕(1881~1955),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였다. 베리 신부의 본래 이름은 윌리엄이었는데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본받고자 토머스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그는 아퀴나스의
베리 신부는 예수를 진화의 종점으로 이해한 테야르 드샤르댕의 영향을 받았다. 생태신학자인 디아무드 오무쿠 신부는 그를 “드샤르댕의 가장 위대한 제자”로 평가했다. 하지만 베리 신부는
우주·지구·인류의 역사를 통합한 역작
‘지구학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는 문화사학자였던 베리 신부에게 사학 방법론을 제공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역사가였던 잠바티스타 비코였다. 비코는 인류 역사를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의 시대로 구분했다. 베리 신부가 인류 역사를 ▶부족 샤머니즘 시대 ▶전통 문명 시대 ▶과학 기술 시대 ▶생태대(Ecozoic Era)로 구분한 것은 비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생태대는 인간과 지구가 상호증진적(mutually-enhancing)인, 즉 상생(相生)적인 관계에 놓이는 시대다. 생태대의 개막은 6500만 년 전 시작돼 지구와 생명을 파괴해온 신생대(Cenozoic Era)의 종언을 의미한다.
생태대가 도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가나 혁명가에게 이론이 있다면 베리 신부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그에겐 ‘이야기’가 곧 이론이다.
인류에게는 원래 ‘우주 이야기’가 있었다. ‘우주 이야기’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을 줬었다. 그는 인류가 새로운 우주 이야기를 갖게 돼 우주에 새롭게 매혹될 때,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 행위가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래적 ‘우주 이야기’의 원천은 신화와 종교였다. 아이작 뉴턴만 해도 물리학보다는 성서 연구에 더욱 몰두했다. 뉴턴은 우주가 기원 전 4000년에 창조됐다고 계산했다. 현대 과학은 우주가 137억 년 전에 생겼다고 본다. 과연 과학자들은 베리 신부의 ‘우주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을까.
과학과
베리 신부의 경우는 어떤가. 베리 신부의
원죄나 삼위일체, 최후 심판은 없어
베리 신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