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강남 초고층 아파트 막을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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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한 2.17 조치로 한때 떠들썩했던 서울 압구정동의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 계획도 된서리를 맞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빙산의 일각으로 잠시 수면 아래 잠복했을 뿐이다. 초고층 재건축은 압구정동만의 문제가 아니고 언젠가 서울의 강남 전체에 물밀듯 불어닥칠 이슈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에서 휴대전화에 이르는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았듯, 건축기술의 발달에 따라 초고층 건물도 도시를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요소가 돼가고 있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수록 건축비는 많이 들지만, 보다 높은 곳에서 조망을 즐기려는 인간의 욕심은 그보다 더 많은 값을 지불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초고층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주거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초고층 아파트에 대한 시장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1960, 70년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땅 한 평 없는 닭장 같은 집이라고 혹평받던 아파트가 지금은 주택의 기본유형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같이 개인적 선호를 떠나 초고층 아파트가 언젠가 우리 도시를 구성하는 보편적 주거양식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면, 강남의 초고층 재건축 문제도 애써 외면하거나 마냥 미루어 놓을 수만은 없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이 문제를 개별사안으로 접근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다가는 애당초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추진된 판교 대책처럼 판돈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차제에 보다 장기적.종합적인 도시정책이나 주택정책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주택정책 차원에서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궁극적인 해법은 재건축을 통해 이 지역의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투기 우려 때문에 그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투기가 문제라면 재건축 그 자체를 억제하기보다 재건축에 따른 초과이윤이 공공에 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한편 초고층 아파트가 도시 외곽의 그린벨트나 신도시 등에 들어서는 것보다는 이미 고층.고밀로 개발되어 있는 강남에 들어서는 것이 효율성.환경보존 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즉 지금과 같이 초고층 아파트가 고립된 섬처럼 도시 전체에 여기저기 흩어져 들어서면 도시경관을 해치고 주변 지역에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이미 고층.고밀화되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집단화하는 것이 좋다. 대신 그린벨트나 신도시 같은 외곽 지역에는 저층.저밀의 단독주택이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부 해제되고 있는 그린벨트에는 국민임대아파트가 주로 들어설 계획이다. 이는 도시정책 차원뿐만 아니라 주거복지 차원에서도 결코 옳지 않다. 대중교통 등 기반시설이 부족한 도시 외곽의 그린벨트는 저소득층이 거주하기에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은 기성 시가지에서 역세권 주변에 산재한 상당 규모의 철도용지를 활용해 공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역세권 개발을 통한 개발이익만으로도 그 주변의 철도용지 위에 데크(deck)를 씌워 많은 물량의 임대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 철도용지를 활용하면 토지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세권 주변 지역은 저소득층이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미래 도시의 입체적 모습에 대한 건축적 상상력을 발휘해 도시문제와 주택문제 해소를 위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해 볼 때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도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