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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빨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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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빨강
김융희 지음, 시공사
220쪽, 1만2000원

'붉은 악마'에서 '레드 콤플렉스'까지, 한국 사회에서 빨강은 말이 많은 색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빨강 신호등은 '거기 서!'라고 말하고, 빨강 종이(레드 카드)는 '퇴장!'이라고 외친다. 빨강은 색 중에서 가장 나서기 좋아하는 색이라 할 수 있다. 빨강은 왜 그렇게 소란스럽고 자신만만할까.

철학과 미학을 공부한 김융희 서울예술대 교수는 이렇듯 우리 눈길을 끄는 빨강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에 그려진 붉은 들소는 인류사에서 가장 먼저 색깔로 인정받고 쓰인 색이 빨강임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무덤벽화에 남아있는 붉은 새 '주작'은 영원한 생명을 염원하는 불멸의 화신이다. 빨강은 우리 몸 속에 피로 흐르면서 힘과 에너지를 상징한다.

빨강이 이렇듯 불멸과 영광의 색으로만 존경받았던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유혹과 금기의 색으로, 열정과 소비의 색으로 끊임없이 변해왔다. 빨강이 신화.역사.문학.미술.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떻게 변신의 마법을 부렸는가를 살피는 지은이의 열정 또한 빨강이다. 서양 색채학에만 기대지 않고 우리 나름의 빨강 이론을 펼친 점이 돋보인다. 빨강의 세계를 빠져나오는 마무리 역시 뜨겁다.

"삶의 여행은 빨강을 간직한 여행이다. 그러므로 빨강이 사라지면 삶의 여행도 끝난다. 강렬하고 도발적인 매혹과 두려움을 한꺼번에 선사하는."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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