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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기념조형물 선정기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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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 앞에 서 있는 보로프스키(Borofsky.미국)의 '망치질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잘 알다시피 검은 실루엣의 이 거대한 조형물은 느리게 망치질 운동을 반복하는 노동에 바치는 헌사, 즉 노동 예찬이다. 보로프스키는 '인간 정신(마음)은 가슴과 손 사이의 공간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손'위에 군림하고 손을 지배하는 것이 일상화된 '머리'들만의 세상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망치질하는 사람'은 서울에 72번째 세워졌다(프랑크푸르트 것이 A1이고 한국 것은 A72이다). 세계 곳곳의 이렇다 할 대도시에 거의 다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여기 서게 된 이유는 작가의 의도나 작품성과는 별개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다. '너만 있냐 나도 있다'는 식의 소위 골빈 명품족들의 속물취미가 아니겠는가 하고 의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망치질하는 사람'은 노동을 위한 망치질이 아니라 유명도와 명망성으로 무장하고 우리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괴물로 둔갑한다. 좁은 공간, 위치에 맞지 않는 억지 배치 등으로 나는 실제로 이 작품과 맞닥뜨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한때 비자금 마련 창구였다는 혐의를 받았던 포스코 앞의 스텔라 작품, 전혀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63빌딩의 리처드 리폴드 작품, 일신제강의 마우로 스타치올리 작품 등 초대형 초고가의 조형물, 그리고 대재벌의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들어왔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다만 그 비싼 가격에 하나같이 입만 쩍 벌릴 뿐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기념 조형물로 팝아티스트 올덴버그의 작품을 세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중앙일보 2월 19일자). 유명한 작가, 좋은 작품은 그것이 외국 작가의 것이라 한들 세워진다는 것은 박수 칠 일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청계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이의 복원이 가지는 역사적.생태적.환경적.문화적 의미, 나아가 공공미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 하는 것 등의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더 나아가 왜 올덴버그라는 작가냐, 그리고 그의 어떤 작품이냐, 그 작품이 그 장소에 맞느냐 하는 현실적인 것까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올덴버그는 쌍안경.아이스크림.립스틱.야구방망이.빨래집게 등 일상적인 생활용품이나 공산품을 수천 배 확대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현대의 물신숭배-토템이랄까.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얼굴(상표)은 있으나 개성-같은 제품은 모양.성능.맛 등이 균일해야 한다는 점에서-이 없다. 이것들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다 사라졌는지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한다. 그저 생산(탄생)되었다 소비(죽음)될 뿐이다. 대중은 그냥 쓰고 버릴 뿐이다. 올덴버그는 이러한 상품의 탄생과 소비의 메커니즘에 기념비성을 부여한 것이다. 미국의 팝아트가 그런 것처럼 올덴버그는 이와 같이 산업자본주의의 찬가를 계속 불러온 것이다. 가장 미국적인 작가, 그는 유명하다. 그의 작품이 세계 곳곳에 없는 곳이 없다. 그만큼 뻔하고 반대로 유명도만큼 비쌀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의 것이다. 시민이 주인인 만큼 서울시는 주인에게 청계천 복원 기념조형물을 올덴버그로 선정한 이유와 과정, 가격까지도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시민은 알 권리가 있다. 이와 함께 시민도 자신의 권리인 문화권을 스스로 챙길 때가 되었다. 앞의 보로프스키의 경우처럼 뒷북만 치면서 남의 흉내만 내는 몰개성의 서울을 만들 것인가.

임옥상 화가.설치미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