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감독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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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융감독원의 존재 이유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확보와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에 있다. 그러나 태광그룹 사건만 해도 수상한 대목이 한둘 아니다. 금감원은 쌍용화재 인수 당시 다른 경쟁업체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막았다가 태광산업에는 2주 만에 허용했다. 인수 승인은 열흘 만에 신속하게 나갔다. 지난해 흥국생명 검사에서 금감원은 계열사 골프장 회원권을 비싸게 구입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문제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고객에게 거둬들인 보험료를 이렇게 써도 되는지 의문이다. 뒤늦게 비난이 일자 금감원은 다음 달부터 흥국화재를 검사하겠다고 허둥대고 있다.

 신한금융도 금감원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사태가 이렇게 악화(惡化)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난해 금감원은 금융실명제 위반 정황을 발견해 놓고도 원본서류가 검찰에 압수됐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갔다. 차명계좌를 알고서도 1년간 덮어둔 셈이다. 참고로 3억원 이상의 차명계좌는 직무정지(職務停止) 이상의 엄한 처벌이 따르는 중대한 사안이다. 금감원은 신한금융 사태가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최근에야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지난해 금감원이 정부의 눈 밖에 난 KB금융에 대해 은행장의 운전기사까지 압박 조사한 것과 너무 대비된다.

 금감원은 어느 조직보다 낙하산 인사엔 재빠르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금감원의 고위직 출신 88명 가운데 84명이 금융회사에 재취업했다. 재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일주일에 불과했다. 사실상 갈 자리를 미리 마련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며 옹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한금융·태광그룹 사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신한은행 감사는 금감원 국장 출신이고 흥국생명 감사도 마찬가지였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예방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금융 선진화를 위해 금융규제는 완화하되 금융감독은 한층 강화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견해다. 그러나 직무유기(職務遺棄)나 다름없는 금감원의 행태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불편하다. 금감원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