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글로벌'로 가는 도요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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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도요타시의 도요타자동차 사옥에 가면 낡은 철제 책상과 캐비닛에 넘쳐나는 서류 더미를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나 쓰던 검은색 전화기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매년 1조엔(약 10조원)이 넘는 이익을 내는 회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도요타는 37년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가 창업을 하면서 "설비투자 이외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며 내실을 강조했다. 그래서 창업 이래 공장 설비에는 막대한 돈을 쓰면서도 각종 비용을 아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도요타가 크게 변하고 있다. 40여년간 사용하던 3층짜리 본사 건물 옆에 3000억원을 들여 16층짜리 신사옥을 지난달 완공했다. 나고야에는 49층짜리 최첨단 빌딩을 짓고 있다. 창업자의 정신을 보여 주는 도요타회관과 산업기술기념관도 수십억원을 들여 새로 인테리어를 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도요타식 경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다.

이런 변화는 도요타 창업 일가의 승계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창업 4세 중 장손인 아키오(章男.48)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95년 이후 전문경영인에게 넘어갔던 사장 자리를 물려받을 채비를 했다. 앞으로 4세 시대에는 구두쇠 이미지보다 '글로벌 도요타'라는 옷이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얘기다. 도요타는 충성스러운 종업원과 종신고용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식 경영의 마지막 보루라고 불린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기는 어려운 듯하다. 도요타 직원들은 "이제 회사가 부자니 직원들도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노조는 올해 보너스(총액 평균)를 5% 이상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창업정신만으로는 이제 비용 절감과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힘이 버거워 보인다.

최근 도요타가 삼성식 경영(능력에 따른 성과급과 유연한 고용)을 배운다고 한다. 도요타의 변신은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글로벌 경쟁 시대의 교훈을 새삼 일깨워 주는 것 같다.

김태진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