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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저출산 대책, 여성친화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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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경제의 앞날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위협요인의 하나로 서슴없이 저출산을 지목했다. 그런가 하면 유엔은 2050년이 되면 한국의 고령인구 비율이 일본을 앞지르게 되리라는 우울한 전망을 보고하고 있다. '출산 파업'의 여파가 예상외로 거센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오래도록 인구과잉을 우려하는 데 길들여져 온 우리네로선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길러도…' '삼천리는 만원'이라 여겼기에 '가족계획은 이웃과 상의하여 두 집 건너 하나씩'을 외치던 신세대 정서를 가벼운 농담쯤으로 흘려버렸다. 이들 신세대 사이엔 결혼과 더불어 시부모님을 향해 "손자 하나 낳아 드릴까요" 등의 일명 신(新)손자병법이 유행이라지 않던가.

일단 하락하기 시작한 출산율이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 당혹한 정부는 부랴부랴 다양한 출산 장려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가임기 여성에게 "300만원 준다면 셋째아이 낳을 건가요?" 물어보면 예외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우리 현실일진대 출산 장려책만으론 저출산의 대세를 되돌리긴 역부족임은 확실한 것 같다.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게 된 현상,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진단이 내려졌다. 가장 중요한 요인으론 역시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 때문이다. 예전 자녀가 노동력의 원천이자 노후보장책으로서 다복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의 자녀는 소비재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값비싼 투자의 대상으로 변화했다. 그뿐이랴, '기러기 부부.갈매기 부부'를 감수하면서 자녀교육에 헌신한다 해도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하는 건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인 시대가 왔다. 결국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둥지를 떠나기까지 과도한 투자와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는 한국적 상황에선 "아이 낳기가 겁난다"는 심정이 가장 솔직한 고백인 듯싶다.

이제 저출산의 가속화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최소 수준의 인구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출산→양육→교육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관점에서 우호적이고 친화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획기적 패러다임의 도입이 요구된다.

지금처럼 '출산.양육=여성의 일차적 책임=노동생산성 저하'로 인식되는 한, 커리어를 희생하고 싶지 않은 여성의 입장에선 출산 파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요, 공교육 부실화와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교육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계속되는 한 출산 장려책의 효과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야흐로 저출산 해법을 찾아나서는 길에는 가족과 기업, 그리고 국가의 세 주체가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축해 각 수준에서 명확한 책임과 의무를 인식하고 구체적 역할을 찾아내 실천에 옮겨야 할 때다. 우리보다 앞서 출산파업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서구의 경험을 벤치마킹해본다면 출산과 양육이 곧바로 여성의 생산력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업 차원의 공보육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여성의 양육 책임이 커리어에 장애요인이 되지 않도록 출산 이후 복귀 보장하기, 출산 이후 일정 기간 파트 타임제로 전환시 커리어를 인정해 주기, 전문직 여성의 출산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인력 확보하기 등 여성 친화적 프로그램을 제도화하는 방안과 더불어 '남편 출산 휴가제'의 확대와 적정 수준의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단 출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부담을 기업에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한 만큼 이는 국가 주도하의 사회보험 형식으로 분담하는 방안을 추진해볼 만하리라 생각한다. 덧붙여 한국적 상황에서라면 '사교육비 공포'를 불식해 주는 방안, 기러기 가족을 선택하지 않아도 좋을 현실적 대안 마련, 획일적이고 소모적인 대학입시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방안 등이 구체화될 때만이 즐거운 마음으로 출산을 선택할 미래엄마 세대가 증가할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