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리 동결 이후 우려되는 후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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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은행의 ‘고뇌에 찬’ 기준 금리 동결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거세지는 환율 전쟁 속에서 우리만 불쑥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3년물 국고채 금리가 연 3.48%로, 9월 소비자 물가상승률 3.6% 밑으로 떨어졌다. 눈앞에 마이너스 실질금리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제 금리 상품 투자자들은 앉아서 손해를 보는 세상이 됐다. 일부 은행들은 연 2%대의 초(超)저금리 정기예금 상품까지 내놓고 있다. 금리 투자 시대는 사실상 종언(終焉)을 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금리 동결이 ‘인플레이션 용인’이란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시중에는 600조원이 넘는 단기 부동자금이 떠돌고 있다. 저금리를 피해 한꺼번에 증시나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면 자산거품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저금리로 인한 도덕적 해이도 걱정스럽다. 우리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가계대출 증가세는 멈출 기미가 없다.

 물론 통화당국이 인플레이션 방어에만 골몰할 때는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금리 인상을 미루고 통화팽창 정책을 고수하는 현실이다. 환차익을 노려 쏟아져 들어오는 해외 핫머니는 원화 강세를 자극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하반기 들어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4%대로 떨어졌고, 반도체 등 주력 수출품목의 국제시황마저 나빠지고 있다. 물가-경기-환율의 전형적인 트릴레마(trilemma:三重苦)라 할 수 있다. 통화당국의 고민이 깊어갈 수밖에 없다.

 한은이 9월엔 부동산 때문에, 이번에는 환율을 이유로 기준 금리를 묶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비상사태에 맞서 우리의 금리 수준 역시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 거품이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다행히 저금리 속에서 증시만 들썩일 뿐 아직 부동산 가격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자산거품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금리로 환율을 잡으려다 참극(慘劇)을 빚은 일본의 교훈이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강세를 막으려 금리를 내렸다가 초대형 거품을 맞았다. 이런 재앙을 피하려면 한은과 정부가 트릴레마에 대처하는 최선의 정책조합을 찾아나가야 한다. 한은에만 모든 부담을 떠넘기지 말고 재정·외환정책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초저금리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통화정책마저 무력(無力)해지기 때문이다.

 금리는 기본적으로 경기상황과 물가흐름에 맞춰 운용돼야 한다. 통화당국은 자산거품과 물가 압력을 막기 위해 균형된 금리 수준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원화 강세를 부추기는 해외 단기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은 별도의 장치를 마련해 통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비상 사태에는 비상한 수단이 동원돼야 한다. 그러나 자산거품 같은 후유증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위기가 진정되는 대로 모든 비상대책을 한시바삐 정상화 쪽으로 돌려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