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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 비자금 로비 의혹]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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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용한 ‘은둔형’ 오너, 기업 확장에 앞장선 공격형 경영자-.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된 태광그룹 이호진(48·사진) 회장의 두 얼굴이다. 그는 평소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는 평을 들어왔다. 이 회장의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81학번) 중에서도 그를 뚜렷이 기억하거나 활발히 교류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조용한 성격답게 술도 잘 마시지 않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 일에만 매달린다고 한다.

  그가 이끄는 태광그룹도 비슷하다. 5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40위권의 기업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외부와 소통을 꺼리는 사풍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태광그룹은 1990년 창립 40주년 행사를 한 뒤로 20년간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았다. 60주년을 맞은 올해 들어서야 문화행사를 계획한 정도다.

 이런 사풍은 회사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가 창업자 고(故) 이임용 회장의 처남이다. 회사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엔 거의 매년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1979년엔 6개월 동안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고난은 5공 때도 이어졌다. 자연히 ‘눈에 띌 일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고 이임용 회장은 생전에 “기업은 (다른 일에 나서지 말고) 사업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태광그룹은 90년 일주학술문화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장학사업에 3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하지만 그룹 측은 이를 외부에 널리 알리려 하질 않는다. 이호진 회장도 이런 스타일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태광과 인연을 맺었던 한 재계 인사는 “회장이 이사회에도 잘 안 나타날 때가 많았다”며 “기업 분위기가 보수적이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태광은 ‘짠돌이’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75년부터 쓰고 있는 서울 장충동 사옥은 옛 동북고등학교 건물을 고친 것이다. 이 회장은 물론 계열사 사장들도 출장 땐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타곤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은 기업 확장에 나설 때만큼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96년 아버지인 이임용 회장이 작고한 뒤 97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태광산업 사장이 됐다.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과 흥국생명 등 금융업이 주력이던 태광은 그후 유선방송 사업에 뛰어들어 공격적 확장을 계속했다. 결국 지난해 케이블방송사 큐릭스를 약 4000억원에 사들이면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업계에서 확고한 1위에 올랐다.

 빠르게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2006년엔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대한화섬과 태광산업 지분을 사들이며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한편 태광은 2006년 롯데그룹으로 넘어간 우리홈쇼핑을 두고 이 회장의 사돈가인 롯데그룹과 송사도 벌이고 있다. 이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쓰식품 회장의 사위다. 

최지영·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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