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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반도체의 '화려한 부활' 이끈 우의제 사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우의제 사장

사연 많은 기업 하이닉스반도체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제 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에 현지공장을 짓기로 했으며,대만엔 위탁가공 체제를 구축했다. 지난해 올린 2조원대 순익이 도약의 발판이다.전직 뱅커인 우의제 사장은 "자신감은 갖되 자만은 버리자"고 다짐하고 있다.

포브스코리아 3월호가 하이닉스 반도체의 부활을 취재했다.

하이닉스반도체가 회생 단계를 넘은 지는 오래다. 지난 2003년 3분기에 영업이익을 냈을 때만 하더라도 '웬일이냐'는 반응이 많았다. 이젠 모두들 눈을 비비며 다시 보고 있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5조8,834억원과 영업이익 1조8,780억원, 순이익 2조199억 원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증권사 추정치의 평균이다.

하이닉스는 이로써 지난해 순이익 기준으로 삼성전자ㆍ포스코ㆍ한국전력에 이어 '4강'에 진입했다. 하이닉스에 이어 현대자동차가 순이익 1조7,846억 원을 올렸다. 이밖에 LG필립스LCD가 1조6,550억 원, SK㈜는 1조6,448억 원, LG전자는 1조5,262억 원, SK텔레콤이 1조4,94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2년여 간 변신을 주도한 우의제(61) 하이닉스 사장을 2월 14일에 서울 대치동 사옥에서 만났다. 우 사장은 "하이닉스는 기술과 직원 역량, 그리고 고객 평가 등에서 워낙 훌륭한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LG반도체 흡수합병에 이은 반도체 경기 하강으로 한때 재무적으로 극심한 곤경에 빠졌을 뿐이며 최근 실적이 '제 실력'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하이닉스는 31.9%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론과 인피니온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10%선에 불과하다. 우 사장은 "제조원가를 낮추고 판매단가는 높였다"고 설명한다. "반도체 제조원가는 투입량 대비 완제품 비율인 수율 등에 좌우됩니다. 하이닉스는 초미세가공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수율을 높였습니다. 또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우수한 품질에 제때 공급함으로써 좋은 값을 받았어요."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율만이 아니다. 우 사장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취임 초기에 "회사를 위해 희생해 달라"고 설득해 임원의 3분의 1을 내보냈다. 이와 함께 엄격한 윤리경영 기준을 적용, 이에 어긋난 행동을 한 임직원들을 내보냈다. "어려울수록 기강이 흐트러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원과 함께 분사와 매각을 진행했다. 한때 2만2,000명이었던 하이닉스의 인원은 현재 1만1,000명으로 줄었다. 우 사장은 "나간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상세한 언급을 피했다.

우 사장은 '실업자 처지'를 취임 전에 경험했다. 2000년 5월에 외환은행장 직무대행을 그만둔 뒤 2001년 3월 하이닉스와 사외이사로 인연을 맺기 전까지인 10개월 동안이었다. "이전에 소홀했던 집안 대소사를 챙겼죠.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여유있게 운동도 즐겼어요. 하지만 인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과연 조직에서 잘 나간다는 게 뭔지…."

"그래서 '사장은 봉사하는 자리'라는 마음가짐으로 2002년 7월에 대표이사 자리를 맡았다"고 그는 술회했다. 그는 팔을 걷어부치고 지원자로 나섰다. 이천과 청주 공장을 돌며 직원들을 격려했고 식당에 들러 야근하는 직원들의 밤참을 배식했다. 간부들에게는 정기회의 자리를 마련해 주요 사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결정된 사항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주요 본부장들 사이에 협조가 잘 이뤄지죠."

우 사장은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이천 공장 리모델링을 예로 들었다. "3개월 만에 클린룸 공사를 마쳤어요. 7월 하순에 장비를 들여 놓았죠. 장비반입 3개월 뒤인 10월 말부터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T1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여진 리모델링은 8인치 웨이퍼 라인을 12인치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반도체 업체들은 원가를 낮추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더 큰 직경의 웨이퍼를 투입해 반도체를 만든다.

"다른 업체들은 장비반입에서 생산까지 적어도 6개월이 걸립니다. 또 초기 수율이 50%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생산까지 기간을 3개월로 단축하고도 첫 시험가동에서 90%대의 '골든(golden) 수율'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이라고 자평했다.

기간단축과 초기 골든수율 달성은 만반의 준비를 거친 결과였다. "우선 제조기술과 공정관리 부서 담당자들로 T1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어요. 구매ㆍ자동화ㆍ설비기획ㆍ제품개발 등 부서도 프로젝트 팀을 유기적으로 돕도록 했죠. 장비가 반입되기 전에 엔지니어와 생산라인 근무자들이 협력업체에 나가 가동방법을 충분히 익혔습니다."

그는 요즘 임직원들에게 "자신감을 갖되 자만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하이닉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무형의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은 채 안주한다면 또다른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우 사장이 구상하는 새로운 도전은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 그는 이미 이를 위한 포석을 마쳤다. 하이닉스는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와 현지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지난해 11월에 제반 계약을 매듭지었다. 중국 현지공장은 이르면 1분기에 착공해 2006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월에 대만 프로모스(ProMOS)와 위탁가공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모스는 올 하반기부터 하이닉스의 공정기술을 적용해 메모리반도체를 생산, 하이닉스에 공급할 예정이다.

"현지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에 진출하기로 했습니다. 프로모스와의 제휴는 신규투자 없이도 수요 확대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죠. 중국 진출과 대만 위탁생산의 공통적인 효과는 해외 생산기지 확보를 통한 통상문제 대응입니다."

하이닉스가 중국 진출을 발표했을 때 기술이 유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다. 우 사장이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 법인의 지분은 하이닉스가 3분의 2, 유럽의 ST마이크로(STMicro)가 3분의 1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토지와 건물을 유리한 조건에 제공할 뿐, 지분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아요. 우리가 경영한다는 말입니다. 또 현지공장에는 연구ㆍ개발(R&D)과 설계기능이 없어요. 중국에서는 단순생산만 하는 것이죠." 그는 "기술은 생산라인이 있는 곳이 아니라 핵심인력으로부터 유출된다"고 부연했다. "미국의 마이크론이 우리 기술에 관심이 있다면 어디에서 구하려 할까요. 한국보다 가까운 오레곤주 유진시에 있는 공장을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에 들어서는 하이닉스 공장으로부터 기술이 유출된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합니다."

우 사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오는 2007년까지 임기로 재선임됐다. 사외이사 시절까지 합하면 그가 하이닉스에 몸 담은 지 이제 4년이 된다. 뱅커에서 반도체회사 CEO로의 변신을 묻자 그는 "어디든 경영의 요체는 똑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반도체 비전문가라는 말을 적잖이 들었어요. 심지어 거래처에서도 드러내놓고 그러더군요. 하지만 CEO가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CEO는 전문가 집단에게서 의견을 듣고 '무엇을 해야 하며 그 일을 누구에게 부여하느냐'를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CEO는 또 책임과 권한을 일과 함께 부여해 각자가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 하죠. 그 다음에는 진행 단계를 점검해 실적에 상응한 책임과 적절한 보상을 내려야 합니다." 그는 "아직 좋은 성과에 대해 충분히 보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보상이 보장되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똘똘 뭉쳐 일해온 임직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우의제 사장 프로필

1944년 경기 화성 생

경기상고ㆍ서울대 상대 졸

1967년 외환은행 입행

2000년 3~4월 외환은행 부행장

2000년 4~5월 외환은행 직무대행

2001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

2002년 7월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

2004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재선임)

포브스=백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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