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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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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장소는 스탈린그라드다. 나치 독일과 소련이 대치한 폐허에 목동 출신 저격수가 등장한다. 그의 모신나강 소총에 독일군은 속절없이 쓰러진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한 장면이다. 주드 로가 연기한 바실리 자이체프는 실제 인물로, 독일군 242명을 저격했다고 한다. 그의 소총은 승전의 기념으로 스탈린그라드 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것이다.

총의 등장은 ‘남자의 자격’을 바꿨다. 고대의 전장을 주름잡던 역사(力士)는 총기시대 이후 무대를 잃었다. 스필버그의 출세작 ‘레이더스’에서 건장한 체구에 큰 칼을 휘두르던 사나이는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의 권총에 어이없이(?) 쓰러진다. 이런 시대에 역발산 항우, 아킬레스와 헥토르는 어떤 의미일까.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총을 드는데.

그래서 허약한 남자들에게 총은 로망이다. 말끔한 모습으로 우락부락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서부극에 열광하고, 성냥개비를 질겅거리는 쌍권총 사나이에 환호한다. 총의 등장은 전통적인 힘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1대1로 맞서는 당당함이 사라지고 계략과 암수가 횡행하는 ‘잔머리’ 마초(Macho)가 횡행한다. 뒤에서 쏜 자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서부의 ‘불편한 진실’이 아닌가.

총이란 개념의 기원은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디어는 ‘바람 부는 숲’이다. 흔들리던 나무가 원상태로 복원되는 데서 ‘비틀림’의 에너지 축적 효과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활과 투석기의 출발점이자, 축적된 에너지의 순간적인 방사(放射)라는 점에서 화약이 각광을 받는다.

문제는 정확성인데, 영화 ‘더블 타겟’에서 스나이퍼는 적중(的中)을 위해 풍향과 풍속과 습도와 중력까지 계산한다. 하지만 일탄일도(一彈一倒)는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베트남전에서 1명 사살에 평균 2만 발의 탄환이 소요됐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의 백발백중 사격술이 화제다. 세 살부터 총을 잡아 100m 앞 전등과 병을 줄줄이 맞힌다고 한다. 20발 모두 10점 과녁에 명중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군인 10명 중 2명은 명중률이 60% 이하란다. ‘버튼’에 강하고 방아쇠에 약해서인가. 물론 전쟁에서 참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명사수 역시 쏘지 않음으로 쏜다. 불사이사(不射以射)의 경지다. 이때의 과녁은 상대의 ‘가슴’이다. 그리고 가슴을 꿰뚫는 탄환은 바로 뜨거운 가슴일 터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