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500만원 족쇄 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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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노조를 탈퇴하거나 투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500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위한 집단소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비정규직 조합원과 이런 내용의 위임계약서를 체결한 것으로 밝혀져 말썽이 되고 있다. 금속노조 법률원은 현대차의 울산·전주·아산공장 비정규직 조합원 2000여 명에게서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의 ‘근로자 지위 확인 및 체불임금 청구’ 소송을 위임받아 이달 중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할 예정이다. 소송 위임장은 지난주 초부터 체결 중이다. 이 같은 소송은 7월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자동차 협력사 직원인 최병승(36)씨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최씨가 도급업체의 지휘를 받지 않고 현대자동차의 지휘를 받아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원들과 맺은 ‘위임계약서’ 제5조에는 ‘갑(조합원)이 금속노조에서 탈퇴하거나 제명되는 경우, 금속노조의 불법 파견 투쟁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을(변호사)의 소송 행위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갑은 을에게 500만원의 위약금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금속노조는 또 노조원들로부터 승소할 경우 얻는 경제적 이익의 3%를 금속노조의 투쟁기금으로 납부할 것을 약속하는 결의서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를 ‘결의 대상자’로 명시한 ‘금속노조 투쟁기금 납부 결의서’에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금속노조의 투쟁지침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를 상대로 하여 진행되는 ‘근로자 지위 확인 및 임금청구 등 사건에서 본인이 얻은 경제적 이익의 3%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금속노조 투쟁기금으로 납부할 것을 약정한다”고 돼 있다.

이와 관련, 금속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노조원들의 불만이 올라오고 있다. ‘CBJ’라는 아이디의 노조원은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비정규직들의 심리를 이용해 (금속노조의) 조합원 세 불리기와 투쟁 인원의 확보를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고, 아이디 ‘놀부’는 “일정 부분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해도 너무 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한편 현대차 울산공장의 비정규직 30여 명은 위임계약을 체결하러 갔다가 위약금 조항 때문에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법률원의 김태욱 변호사는 “당초에는 이런 조항이 있었지만 오래전 내용을 변경했다. 당초 계약서로 계약한 조합원은 극소수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내용이 바뀐 계약서를 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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