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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한강 투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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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스토-ㅂ’/항구의 종점이올시다/때때로 임자 없는 모자들이 난간에 걸려서는/‘인생도 잘 있거라’고 바람에 펄럭입니다/그러므로 기둥 밑에는 아가씨들을 위하여/ 커다란 눈물 박기(그릇)가 놓여 있습니다”. 김기림 시인의 시(詩) ‘한강 인도교’다. 한강 다리의 투신 자살 풍경이 몹시도 서글프고 쓸쓸하다. 그가 살았던 1920년대에도 한강 투신이 유행했다. 1917년 한강 위에 처음으로 놓인 인도교 탓이 크다. 장안의 명물로 자리 잡은 인도교가 투신 자살자가 속출하는 ‘자살 명소’로 둔갑한 것이다.

한강 투신은 당국의 큰 골칫거리였다. 경성(京城) 용산경찰서가 1922년 자살자의 마음을 돌릴 표어를 현상공모하기도 했다. ‘고진감래라니 죽지 말고 살아 있소’의 읍소형부터 ‘명사십리 해당화는 명년 춘삼월 다시 피지마는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오지 못하리라’는 가사풍까지 다양한 표어가 쏟아졌단다. 인도교 난간엔 ‘잠깐만 참으시오’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 팻말이 붙었다. 다리 위에 당국이 설치한 ‘인사상담소(人事相談所)’도 있었다고 한다.

자살 방지에 이토록 부심(腐心)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 한 신문이 “휴식처이자 놀이터인 한강이 눈물 흘리는 영결장이 되고 있다”고 전했을 정도다. 이러니 ‘한강으로 간다’는 말이 ‘물에 투신해 죽는 일’의 관용적 표현으로 자리 잡을 만도 하다. 염상섭의 『남편의 책임』에는 이런 말까지 있다. “만일 아니 만나주었다가 ‘한강으로 간다’면 사람 잡은 책임이 자기에게로 오고 말 것이다.”

한강 투신 세태는 지금이라고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한강 다리가 24곳으로 늘었으니 오죽할까. 그제 나온 서울시 국감자료를 보면 2006년 이후 24개 한강 다리에서 발생한 투신 사고는 2475건이다. 하루 평균 1.45건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여전히 한강 다리는 자살 명소라는 오명(汚名)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사상담소’가 조사한 20년대 자살 원인은 생활고·염세(厭世)·실연이다. 지금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터다. 이 중에서도 생활고로 인한 자살은 생의 막바지에 내몰린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극한 행위다. 한강 투신을 막으려면 CCTV나 SOS 비상 전화, 투신방지벽 같은 것도 필요할 게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메말라선 아예 한강을 복개(覆蓋)한들 무슨 소용일까 싶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