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리포트] 월말 받는 국민연금 … 공과금·카드비 돌려막기 곤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서울 노원구의 박형준(61)씨는 올 초 신용카드 대금을 내려다 통장 잔액이 100만원가량 부족한 것을 알고 당황했다. 지난해 받기 시작한 국민연금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매달 말일에야 연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다른 데서 돈을 끌어다 메웠다. 그런 일은 다음 달에도 계속됐다. 박씨는 “며칠간의 입출금 미스매치(불일치)를 해결하려고 매번 돈을 꾸거나 다른 계좌에서 이체해야만 했다”며 “나는 다행히 대금을 메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지급일을 둘러싼 연금 수령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신용카드 대금 결제나 통신료 등을 납부하기 위해 대개 20~25일에 돈이 필요한데 연금은 매달 마지막 날에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민연금 수령자가 300만 명을 돌파했지만 정부 정책이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금 수령자들이 가장 곤란을 겪는 건 신용카드 대금 결제다. 날짜를 임의로 정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주로 25~27일에 몰려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월급 날짜(21~25일)에 맞춰 결제일을 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화와 인터넷 요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부분 결제일이 25일이다. 통신사에 따라서는 25일과 27일, 말일 중 선택하기도 한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민연금급여 선진화포럼의 홍성무(64) 위원은 “아파트 관리비 납부기한이 대부분 말일이지만 25일인 곳도 있다”며 “마지막 날에 연금을 타서 납부기한에 걸린 각종 공과금을 내느라 혼잡과 불편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장장애 2급으로 장애연금 수령자인 박창신(40·서울 은평구)씨는 “LH의 전세임대주택(15평 연립주택) 임대료를 세 번 연체하면 집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매번 마지막 날을 놓칠까 봐 불안하다”며 “연금 지급일을 하루만이라도 당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일 열린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선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이 “각종 공과금 납부기한과 신용카드 대금 결제일이 보통 25일인데 유독 국민연금만 말일에 지급해 서민을 배려하지 않는다”며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처럼 지급일을 25일로 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 1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할 때 매달 말일 지급하다 불만이 고조되자 지난해 6월에 25일로 앞당긴 바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국민연금 지급일에 대해선 당장 고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복지부 이상희 공적연금연계팀장은 “25일로 당기면 5~6일치 이자 손실이 연간 50억원에 달하는 데다 연금 수령자가 늘면서 손실 규모가 20년 뒤에는 연간 1400억원으로 불어난다”며 “추가 재정을 정확히 따져 개선책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성식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