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사위 "과거 분식, 집단소송서 2년 유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과거의 정치자금 수수나 분식회계 등에 연루된 정치인과 기업인의 대사면은 이뤄질까. 21일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을 심사한 국회 법사위 소위는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 과거의 분식회계 행위를 집단소송에서 2년간 유예해 주기로 해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 사면조치가 있을지 주목거리다.

이번 소송유예 조치에도 불구하고 분식에 개입한 기업인은 얼마든지 형사처벌(배임 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23일 정부와 정치권.재계.시민단체가 내놓기로 한 '반부패 투명사회 협약'에는 사면조항이 빠진다. 또 이 협약 추진위원회는 대통령의 사면권 남발을 방지하는 장치를 넣는 것도 검토 중이다.

그럼에도 오는 광복절을 계기로 정치자금 수수 정치인 등이 사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가 사면 의지를 직간접으로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이다. 또 시민 단체도 사면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하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 사면설은 솔솔=노무현 대통령은 사회 통합을 위해 사면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 여권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과거사를 캐는 것이 누구를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사면에 앞서 진실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때가 되면 사면 등을 통한 국민 대통합 선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총리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이 총리는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치자금 비리 정치인 등의 사면.복권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민 통합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며,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성숙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22일 반부패 협약을 맺고 다음달 1일 대사면을 추진했다. 그러나 협약 조인이 다음 달 9일로 늦춰져 사면도 연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도 사면에 완강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반부패국민연대 김거성 사무총장은 "협약과 사면은 전혀 별개의 일"이라며 "그러나 기업들이 협약대로 투명.윤리 경영에 힘쓰고 국민이 '사면도 좋겠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사면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사면의 범위는=참여정부는 정치인과 기업인을 막론하고 ▶과거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특별사면하고▶아직 수사를 하지 않은 사안은 자기 고백을 전제로 일반사면(면죄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국민 통합'이라면 갈등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문제를 놓고 여야가 극도로 대립하고 있는 데다 분식회계는 반기업 정서의 뿌리다. 협약에서 '사면권 남용 방지'를 밝히더라도 이 분야 사면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조항 삽입을 주장한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은 "측근에 은전을 베푸는 식의 사면을 막자는 것이지, 과거에 불가피했던 행위는 사면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자금이 대가를 바란 뇌물이었다면 처벌하되, 관행적인 인사성이었다면 기업인은 사면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인의 사면 여부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또 사면의 조건으로 ▶자기 고백▶사면 이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 엄벌을 받겠다는 약속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자금의 대가성이나 분식회계의 고의성을 밝히기가 쉽지 않고 또 대가성이 규명되지 않은 정치자금이라도 규모가 크면 국민이 사면에 반발할 수 있다. 어느 선까지 사면 대상에 넣을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 사면의 필요성은=재계는 기업인들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올 초 한때 집단소송 유예가 좌절됐을 때 기업들은 유명 변호사 영입에 열을 올리는 등 부작용이 나오기도 했다. 협약이 빈말로 그치지 않기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면이 없다면 처벌이 두려워 과거를 공개하지 않고, 그 상태로 무사히 넘어가면 부패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1, 2차 수서 사태, 노태우 정권 비자금 사건, 2003년 굿모닝시티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재계는 수차례에 걸쳐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는 등 자정 선언을 했으나 비리는 되풀이됐다. 이 점 때문에 재계는 지난해 12월 8일 "분식 등에 대해 면책 또는 처벌 경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패방지위원회와 반부패국민연대가 공동 개최한 협약 준비 토론회에서다. 그러자 시민단체 쪽에서 "사면이 없다면 협약에 불참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고, 이에 재계 측은 "그게 아니라 기업의 불가피한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권혁주.김정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