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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제 시대] 1억 아끼려다 10억 물어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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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억원 아끼려다 10억원을 물어주는 일은 없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기업의 한 간부는 최근 법무팀을 강화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월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기업을 주 대상으로 한 증권 집단소송제가 시행된 뒤 대기업들이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소송에서 질 경우 자칫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은 허위공시·자금횡령·주가조작 등으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들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소액주주들에게도 판결의 효력이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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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소송 대리전을 펼칠 변호사 업계는 한해 수백억~수천억원으로 추산되는 집단소송 변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공세 주도하는 중소로펌=법무법인 한누리.KR 등 3~4곳이 주주대표 소송을 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기업을 향해 공세를 펼칠 채비다. 집단소송은 회사 발행주식의 0.01%를 보유한 피해자 50명만 모으면 소송을 낼 수 있고 승소금을 회사가 아닌 주주가 갖는 것이 특징이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주영 변호사는 "피해자가 수백~수천명인 사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조만간 집단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금융감독원이 적발하는 시세조종 및 내부자거래 사건이 집단소송 1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분식회계는 국회가 2년 동안 소송대상에서 제외키로 합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증권 전문 변호사도 원고측에 가세할 전망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의 공동대표 이석연 변호사는 "시민들의 피해가 큰 사안에 대해서는 소비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 공익소송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방어에 나서는 대형 로펌.대기업=증권 집단소송에서 기업 입장을 대변할 대형 로펌은 전담팀을 구성하거나 증권소송 관련 세미나를 하는 등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증권금융부와 일반민사부 소속 변호사 6명으로 집단소송 전담팀을 구성할 예정이다. 국내 최대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잇따르는 대기업들의 자문 요청에 눈코 뜰새 없다. 그러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로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집단소송이 도입돼 전문 변호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고민이다. 대기업은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를 고위 임원으로 임용하는 등 법무팀 강화에 나서고 있다. 사내변호사가 100여명인 삼성은 판사.검사 출신 변호사를 잇따라 영입했으며, SK는 올해 부장판사 출신 2명 등을 보강해 법무팀을 7명으로 늘렸다.

이건행 변호사는 "미 의회가 지난주 통과시킨 집단소송개혁법은 소송 남발과 천문학적인 변호사 수임료를 억제하도록 했다"며 "이는 집단소송이 변호사업계의 돈벌이가 아니라 소비자.주주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조강수.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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