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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37> 최종원을 누가 후원하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7호 05면

연예인이 공직을 맡게 되면 세간의 시선이 더 쏠리게 마련이다. 잘 아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이에 맞설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으니, 바로 7·28 재·보선을 통해 금배지를 단 최종원(60·민주당) 의원이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고 하지 않던가. 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최 의원은 유 장관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완장을 찬 호위관 같다” “인간으로서 근본이 덜 됐다” 등등.

4일 국감장에서 둘은 또 만났다. 이번에도 최 의원의 날선 비판은 계속됐다. 그런데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최치림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최정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이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원장…. 문화계 주요 보직을 이처럼 중앙대 출신이 싹 쓸어가고 있어요. 이거야말로 유 장관의 친위대 구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유 장관이 취임한 뒤 유 장관 모교인 중앙대 인맥이 득세하고 있다는 건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실명까지 거론하며, 이처럼 콕 집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최 의원이 연극 배우 출신인 터라,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에 가능했을 거다. 만약 ‘중앙대 인맥도’와 같은 도표를 준비해 현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 최 의원 주장엔 더 힘이 실렸을 게다.

여기까진 최 의원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다음 멘트에서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최 의원은 또 다른 중앙대 인맥으로 분류되는 임연철 국립극장장을 매섭게 질타했다. 그러고는

최 의원=이토록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기관장이니 문제예요. 극장장, 예술 전문가 아니죠?
임 극장장=(잔뜩 상기된 얼굴로) 예술 경영 전문가입니다.
최 의원=그러니깐, 예술 전문가가 아닌 거죠!

이게 무슨 말인가. 예술 경영자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뜻? 최 의원의 말엔 자신처럼 직접 무대에 섰던 ‘행위자’나 ‘창작자’는 전문인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기획·마케팅 혹은 예술행정·경영자는 ‘한 수 아래’거나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고가 배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피카소가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을 처음 내놓았을 때, 지금처럼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거 잘못 그린 거 아냐?”란 반응이 많았다. 그렇게 묻힐 뻔하던 피카소를 살려놓은 건 화상(畵商) 칸바일러(Daniel-Henry Kahnweiler, 1884~1979)였다. 피카소를 후원하고, 그의 그림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럴듯한 이론으로 감싸 대중의 판타지를 건드렸다. 한마디로 ‘입체파’를 탄생시킨 게, 피카소를 스타로 만든 게, 칸바일러였다. 그러기에 “칸바일러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없었을 것”이란 말을 피카소는 툭하면 했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칸바일러의 초상화’란 그림까지 그렸을까.

이게 100년 전 일이다. 그때보다 훨씬 복잡해진 21세기에 예술 경영·프로듀서·매니지먼트 등의 중요성은 새삼 얘기할 필요도 없다. 최 의원의 예술관(觀)은 분명 세상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최 의원이 배우 시절, 칸바일러와 같은 탁월한 후견인을 만나보지 못한 탓으로 돌려야 할까. 만약 배우 최종원에게 칸바일러가 있었다면, 그는 지금 국회의원이 됐을까.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의 프로듀서를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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