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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부이사관 … 첫 여성 감사관 …관가 '여성의 힘' 뚜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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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첫 여성 부이사관(통일부), 첫 여성 감사관(환경부), 첫 여성 총무과장(농림부)….


요즘 관가의 톱 뉴스 중 하나는 관리직 여성 공무원들의 잇따른 약진이다. 각 분야에서 1호를 기록한 여성 공무원들의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5급 이상 관리직에서 여성의 비율은 아직 10%도 안 되지만 어느 순간 돌풍을 몰고 올 위력이 감지된다. 행정학자들은 "여성 공무원의 고위직 진출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1호 여성' 공직자들=지난 16일 통일부는 윤미량(46.행정고시 30회) 남북회담사무국 회담1과장을 부이사관으로 승진시켰다. 통일부 첫 여성 부이사관(3급)이 탄생한 것이다. 윤 과장은 북한과의 정치.군사회담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농림부는 공직생활 10년도 채 안 된 김정희(35.38회)과장을 총무과장에 발탁했다. 그는 농림부 57년 역사상 첫 여성 총무과장이자 최연소 총무과장이다. 또한 환경부는 최근 이필재(44.29회)폐기물정책과장을 감사관으로 승진시켰다. 여성 공직자의 감사관 임명은 정부 부처를 통틀어 처음이다.

이처럼 '최초'의 기록을 수립한 과장급 이상 여성 공무원의 수는 지난해 말 이후에만 10명이 넘는다.

이화여대 행정학과 박통희 교수는 "여성 행시 합격자 비율이 급증하고, 여성인력을 필요로 하는 사회 추세 때문에 여성 공무원의 고위직 진출은 이른 시일 내에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각종 고시제도를 통해 자격을 갖춘 여성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행시 합격자의 경우 9년 전(1996년) 여성 비율이 9.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38.4%를 기록했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섬세하고 유연한 사고를 지닌 여성 인력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도 유리한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고위직 여성 공직자의 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5급 이상 여성 공직자 수는 모두 1174명으로 전체 관리직의 6.4%에 불과하다. 국방부.국가보훈처.공정거래위원회 등 8개 부처는 과장급 이상 직위에 여성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

◆ "실력으로 한번 겨뤄보자"="발탁이라고 하지만 사실 (남자)동기들과 비교하면 승진 순서상 딱 중간 정도일 뿐이에요." 최근 '여성 1호'를 기록한 일부 관리직 공무원은 "열심히 일한 대가인데 특혜나 배려로 인식돼 억울할 때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환경부 첫 여성 사무관 등 여러 가지 '최초'기록을 보유한 이필재 감사관은 "이제는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양성 평등 채용 목표제는 이제 없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만큼 남성들과의 진검승부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얘기다.

공직사회에 여성 파워가 위력을 발휘하게 된 데에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1995년 '여성공무원 채용 목표제'를 도입해 여성 공무원 비율을 꾸준히 늘려왔다. 또 2003년부터는 '양성 평등 채용 목표제'를 실시해 어느 한 성의 합격자가 7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 부처의 한 남성 공무원은 "일종의 할당제가 도입되면서 남성이 역차별당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여성 공무원도 실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여자 상사 모시기도 익숙해져"=관리직 여성 공무원이 늘어나면서 남성 공무원들이 여성 상사 모시기에 익숙해진 것은 최근의 변화다. 병무청의 첫 여성 과장인 홍승미(38.41회)병역정책과장은 "사무관 초임 때 나이 많은 남자 부하 직원이 '미스 홍' 또는 '홍양'으로 부른 적도 있다"며 "이제 그런 얘기는 전설이 됐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윤미량 과장도 "처음엔 여자 밑에서 일할 수 없어 부서를 옮긴다던 일부 남자가 요즘엔 여성 상사에게서 일도 많이 배우고 성과도 좋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2003년 11월 정부 내 첫 여성 관리관(1급)으로 승진한 여성부 김애량(55)기획관리실장은 "아직까지는 남성적 문화에 맞춰가는 수준이지만 여성 관리자가 많아지면 회식 문화도 바뀌고 집무 스타일도 위계적에서 수평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성 고위직 공무원들의 고민도 많다. 농림부 김정희 과장은 "남성성을 가장하기는 너무 힘들다"며 "덜 공격적이려 애쓰고 부하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정윤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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