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라응찬 중징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금융감독원이 7일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라응찬(사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라 회장의 차명계좌를 관리한 신한은행 전·현직 임직원에 대해서도 징계 방침을 전달했다.

익명을 원한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이날 “실명제 위반에 대한 검사를 마무리하고 라 회장과 직원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신한지주와 신한은행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다음 달 초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라 회장의 징계 수위를 정하기로 했다. 최종 징계는 금융위원회가 확정해 내린다.

금감원은 신한은행에서 차명계좌가 개설되고 관리되는 과정에 라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라 회장과 신한지주 측은 차명계좌가 개인의 일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에 신한은행의 조직적 간여가 확인된 것이다. 금감원은 또 신한은행이 검사 과정에서 허위 서류를 내거나 자료를 파기함으로써 검사를 방해하려 한 부분에 대해서도 징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회사 임원의 중징계는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3가지다. 이 중 하나를 받으면 3~5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 특히 직무정지의 경우 라 회장은 업무를 보지 못해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책경고라면 남은 임기를 채울 순 있지만, 큰 흠결이 지적된 만큼 제대로 직무 수행을 하긴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신한금융지주의 지배구조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은 검찰에서 횡령과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이백순 신한은행장도 재일동포 주주로부터 행장 직무정지 소송을 당한 상태다. 한편 라 회장은 지난 2일 홍콩으로 출국해 국정감사가 끝나는 22일 이후 귀국할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비자금 수사를 진행하던 중 라 회장이 2007년 타인 명의의 계좌에서 50억원을 인출해 박 전 회장에게 전달한 사실을 파악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당시 라 회장의 행위가 실명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금감원은 지난 8월 실명제법 위반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후 신한은행에 검사팀을 파견해 한 달가량 현장조사를 벌였다.

금융실명제법은 계좌 개설 과정에서 실명 확인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을 경우 창구직원은 물론 이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사람까지 처벌토록 하고 있다.

김원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