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合縱連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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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 전국(戰國)시대 중엽. 상앙(商鞅)의 변법에 성공한 진(秦)이 신흥 강국으로 굴기하자 나머지 전국 7웅인 초(楚)·제(齊)·위(魏)·조(趙)·연(燕)·한(韓)은 대비책 마련에 고심한다. 이때 천문·병법·유세술의 대가인 귀곡(鬼谷)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등장했다. 먼저 소진이 연 문공(文公)을 만났다. “가까운 조나라와 손을 잡고, 모든 나라와 국교를 맺어 천하를 하나로 합종(合縱)시키고, 그들과 힘을 합쳐 진을 막아야 한다.” 수퍼 파워에 맞서 여러 나라가 공수동맹(攻守同盟)을 맺는 합종책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진의 제안에 여섯 나라 군주가 모여 “만일 한 나라가 맹세를 배반하면 다섯 나라가 함께 그 나라를 치리라(一國背盟, 五國共擊)”란 동맹조약을 맺는다. 소진은 이 공로로 6국의 정승이 되는 호사를 누린다.

하지만 외교에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 예나 지금이나 오직 국익만 있을 뿐이다. 소진의 도움으로 진나라에서 벼슬에 오른 장의가 합종책 무력화에 나섰다. 장의는 동맹의 약한 고리인 위나라에 거짓 귀화해 양왕(襄王)을 유혹한다. “위나라는 험한 산도 강도 없이 평지뿐이라 이웃 나라들이 침입해오면 사분오열될 위험이 큽니다. 강한 진을 섬겨 보호를 받는 것만이 나라를 유지할 유일한 길입니다.” 위를 동맹에서 빼낸 장의는 남쪽의 강국 초나라에 영토 제공을 미끼로 제나라와의 이간질에 성공한다. 결국 합종책은 각개격파술격인 연횡술(連衡術)로 깨지고 만다. 이처럼 합종연횡술은 태생부터 강대국의 부상을 막지 못했다.

구한말 우리 선조들이 추구했던 외교방책이 바로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에 나오는 ‘친중(親中)·결일(結日)·연미(聯美)’류의 합종연횡술이었다. 반면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경험한 일본은 부국강병에 힘썼고, 노회(老獪)한 청(淸)은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구사했다. 자강(自强) 대신 동맹만 찾던 조선은 나라를 잃었다. 영토분쟁에 나선 팽창주의 대국 중국, 3대 세습왕조 북한, 과거사·독도 문제로 껄끄러운 일본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합종연횡을 넘어서는 외교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달팽이 뿔과 같이 하찮은 와우각상(蝸牛角上)의 정쟁(政爭)보다는 더 큰 전략을 고민할 때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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