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주의의 빛과 그늘(하)
때론 아류상품에도 뜯어볼만한 게 있는 법이다. 특유의 절충주의 태도 때문에 좋다고 소문난 것은 염치 없이 쓸어 담기 때문인데, 새 책 『시속 12킬로미터의 행복』이 그러했다. 경영학자 강수돌이 쓴 이 책은 ‘생태주의 종합세트’다. 이제는 전설인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헬레네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그리고 아동작가 권정생까지 끌어들인다. 느리게 사는 삶, 어머니 대지에 대한 예찬 등 생태주의의 단골 품목이 총동원된다.
근무하는 대학이 세종시에 있어서 예전에 귀농했고, 현직 교수이면서 동네 이장으로 일했다는 그의 생태주의 신념은 그 자체론 나쁘진 않다. 책의 문장도 안정됐다. 하지만 강수돌 표 생태주의는 너무 공격적이다. 산업주의란 곧 파괴주의라며 비판하며 4대강 개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강 정비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삽질”(28쪽)이자, 우주의 질서를 깨는 행위란다. 그는 “개발론자에게 영혼이 있나?”라고 묻기도 한다. 선악 이분법의 태도, 그리고 놀라운 오만함에 기가질린다. 스스로 생태교(敎)의 제사장쯤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칼 세이건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지적한 대로 스스로 가짜 과학의 늪에 빠져 사는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지식인과 자본주의』의 저자 앨런 케이헌은 “생태주의=지식인의 새로운 아편”으로 지적할 정도다. 19세기 이래 서구 지식인은 반(反)자본주의에 열중해왔는데, 공산주의가 몰락한 지금은 생태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소비주의· 개발주의 철학을 바꾸지 않는 한 자본주의에 구원은 없다고 믿는 것이다. 묻지마 반 개발주의, 눈먼 반 자본주의 심리야말로 지난 번 언급했던 급진 생태주의의 ‘숨은 그림자’다. 바로 여기에서 생태주의가 가진 정치성이 싹 튼다.
서구 지성사에서 생태주의의 출발은 19세기 낭만주의 운동이다. 영국인 윌리엄 모리스, 그리고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중심인물이다. 이중 급진 생태주의는 소박한 자연 사랑을 넘어 근대사회의 ‘성장의 철학’ 자체를 부정한다. 그런 철학의 비조는 존 스튜어트 밀이며, 1972년 그 유명한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도 등장했다. 신기한 건 그들이 내놓는 묵시록적 예언은 항상 틀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신자 그룹을 확보한다. 로마클럽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기억하실 것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