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스마트한 것들’의 유토피아 … 그 첫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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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스마트 워크(work)’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이용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다. 지하철이나 카페 같은 ‘거리 사무실’에서 회사 업무를 볼 수 있고, 얼굴을 맞대지 않고 영상회의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 그뿐인가. ‘스마트 스페이스(space)’ ‘스마트 시티(city)’ ‘스마트 플래닛(planet)’ ‘스마트 그리드(grid·지능형 전력망)’ ‘스마트 사회간접자본(SOC)’ 도 있다. IT 기기를 이용해 시스템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구축해 똑똑한 데다 자원 절약까지 해준다.

스마트 시티는 미래 과학 영화의 ‘거미줄 도시’를 연상케 한다. 사람·자동차·가전·도로, 그리고 각종 인프라 등 1조 개 이상의 사물이 서로 연동돼 도시의 모든 시스템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한다. 하루 24시간 전문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병원,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몸에 부착된 센서가 자동으로 병원 시스템에 연결돼 즉시 응급조치가 가능한 의료 시스템은 실용화 단계다.

결국 ‘스마트한 것들’의 기본 전제는 IT에 의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환경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이 해소됐다는 데 있다. 즉 스마트 기기를 통해 직접 접촉하는 듯한 착시 효과가 생겨난다. 요즘 인기를 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도 접촉의 착시 효과를 노린 것이다. 트위터 서비스를 통한 실시간 소통과 대중적 접촉은 마치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사회적 이슈들에 동참하고 있다는 공감과 연대의식을 낳는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기계가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이로 비롯되는 사생활 침해가 사회적 문제가 된다. 며칠 전 미국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열여덟 살의 꽃다운 생명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은밀한 사생활이 카메라에 찍혀 트위터로 중계되자 그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개인적 악몽에서 그치지 않는다. 해커 침입으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된다든가, 분·초를 다투는 의료현장에서의 사고 등 재난 가능성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보안이 취약한 스마트폰의 단점을 악용해 해커들은 통신 자체를 무력화시켜 전 세계를 ‘먹통’의 암흑지대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백화점 쇼윈도의 투명 유리처럼 자명해 보였던 ‘스마트한 것들’의 유토피아는 이 순간 디스토피아가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성 상실’ 우려다. 인간의 의식은 ‘거리감’에 대한 인식을 조건으로 삼는다. 인간 문화의 필수조건도 나이·연륜·권력·경험 등 나와 상대방 간의 ‘거리감’을 인식하면서 책임과 의무에 대한 공적 질서를 배운다. 어릴 때부터 PC게임 등 ‘기계를 통한 대화’에 빠져 큰 청소년들이 과연 이런 거리감의 미묘한 인간관계를 인식해 따뜻한 소통과 공감의 대화들을 나누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의 원리들을 터득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첨단 ‘IT 시대’에도 교육의 가치를 여전히 전인교육이란 고전적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건 역설적이다. 인간 관계의 핵심인 배려·애정·존경·의리 등 따뜻한 인간적 가치를 자라나는 세대에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기계’가 아니라 ‘따뜻한 인간’이 희망이어서다. 이렇게 보면 ‘스마트한 것들의 유토피아’의 첫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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