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톡식 히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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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머리와 팔·다리를 쑥쑥 뽑는가 하면 내장을 꺼내 줄넘기를 한다. 하지만 혐오스런 외모 탓에 사랑하는 이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소심한 구석도 있다. 뮤지컬 ‘톡식 히어로’(이재준 연출)에 등장하는 수퍼히어로 ‘톡시’ 얘기다.

국내 초연인 이 작품은 환경학자를 꿈꾸는 멜빈이 돌연변이 괴물로 변신한 후 부패 권력과 지구온난화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다. 마치 페인트를 통째로 뒤집어쓴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녹색투성이인 톡시는 한 쪽 눈이 툭 튀어나온 데다 역겨운 냄새까지 풍기는,영웅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깝다. 넘치는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톡시가 흉측해 보이거나 밉지 않은 이유는 지구 환경과 연인을 향한 그의 ‘순수한 애정’ 을 엿볼 수 있어서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에서 나온다. 임기홍·김동현은 불량배, 경찰, 새라의 여자친구, 박사 등 각각 15역, 17역의 멀티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며 객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홍지민·김영주는멜빈(오만석·라이언)과 대립각을 세우며 극을 이끌어가는 여시장과 멜빈 엄마, 수녀로 1인 3역을 한다.

특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패러디해 반쪽은 여시장으로, 다른 반쪽은 멜빈의 엄마로 분장해 상반된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장면은 이 공연의 압권이다. 인터미션 없이 이어지는 100분 동안 무대는 볼거리로 넘쳐 난다. 유독성 폐기물통에 빠진 멜빈은 단 2분 만에 톡시로 변신한다. 극이 진행되는 도중에 이뤄져야 하는 이번 분장은 뮤지컬 ‘헤드윅’ ‘이블데드’ ‘캣츠’ ‘미녀는 괴로워’등에서 특수분장을 책임졌던 디자이너 채송화가 맡았다.

배우들의 순발력과 연기력 못지않게 쉴새 없이 바뀌는 의상도 볼거리다. 배우 5명이 갈아입는 의상은 무려 135벌. 이는 제작비만 100억원 이상인 뮤지컬 ‘드림걸즈’가 400여벌, 대표적인 대극장 공연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230여 벌의 의상을 들인 것과 비교해볼 때 소극장 공연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다만 환경문제에 경각심을 주고 순수한 사랑의 의미도 보여주려다보니 메시지의 전달력이 약한 게 아쉽다. 10일까지. KT&G 상상아트홀. 5만5000원, 6만6000원.

▶문의=02-501-7888

< 김은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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