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는 주택시장의 가늠자 기능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파트 거래가 잘 되지 않아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없을 때 경매 낙찰가나 응찰자 수 등은 침체의 심각성이나 시세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요즘 경매시장에서 이런 흐름을 뚜렷이 읽을 수 있다. 전세난의 심각성이나 고가 주택의 외면 현상 등 소비자들의 선호도나 주택경기를 엿보는 것이다.
◆전세난 영향, 3억원 이하 주택 인기=최근 확산되는 전세난은 경매시장에서 3억원 이하 저가 주택의 인기로 나타나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수도권의 감정가 3억원 이하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80.4%로 전달(78.9%)보다 올랐다. 이는 지난 2월(88%) 이후 줄곧 하락하다 8개월 만에 반등한 것이다. 건당 평균 응찰자 수도 6.1명으로 2월 이후 가장 많다. 특히 서울 강동구·양천구·송파구·영등포구 등 전세난이 심각한 지역의 매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지역 3억원 이하 아파트의 평균 낙찰가율은 82%로 서울 아파트 평균(78%)보다 높다. 디지털태인 이정민 팀장은 “전세 계약을 앞둔 사람들이 경매시장을 찾으면서 저가 주택 인기가 점점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개발 호재가 많아 투자가치 1순위로 꼽혔던 강남권의 블루칩 아파트도 외면받는다. 지난달 30일 한 차례 유찰 후 감정가의 80%로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매물로 나온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85㎡형은 응찰자가 없어 또 유찰됐다. 29일엔 이 아파트 145㎡형이 첫 경매로 나와 역시 유찰됐다.
수요자들은 두 차례 이상 유찰돼야 관심을 갖는다. 지난달 30일 경매시장에 나온 대치동 은마아파트 105㎡형은 2회 유찰된 이후 감정가의 76%인 9억1500만원에 낙찰됐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집으로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고급 주택 수요가 확 줄었다”며 “경매 응찰자들은 고가 주택일수록 집값이 더 떨어질 여지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일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