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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밝은 여장부, 룰라 낙점 받은 뒤 무서운 자기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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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호 10면

룰라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브라질 남부에서 대선 유세를 하는 딜마 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3일 1차 투표에서 끝나느냐, 31일 결선투표까지 가느냐. 남미 최대 강국인 브라질이 3일(현지시간) 임기 4년의 새 대통령을 뽑는다.

3일 브라질 대선, 여성 대통령 확실시되는 딜마 호우세피

2005년 12월 상파울루에서 열린 투자간담회에 참석한 딜마 당시 수석장관. 안경을 쓰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65) 대통령이 지난 3년간 공들여 키워낸 노동자당(PT) 후보인 딜마 호우세피(62)의 승리가 확실시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로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 딜마는 55%의 지지율을 기록해 사회민주당(PSDB) 조제 세하(68) 후보, 녹색당(PV) 마리나 시우바(52·여) 후보를 큰 폭으로 따돌렸다. 딜마가 당선되면 브라질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된다. 그녀의 집권 기간 중 브라질은 월드컵(2014년)·올림픽(2016년)을 개최한다. 이번 대선에서 퇴임을 앞둔 룰라 대통령의 영향력은 결정적이었다. 국민 지지도가 81.4%나 되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을 예약한 딜마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반정부 게릴라에서 정치범으로, 불도저 행정가로, 집권당 대선 후보로 변신을 거듭했다.

2003년 1월 룰라 정부의 출범과 함께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된 딜마의 모습은 지금과 딴판이었다. 딜마는 초반부터 숫자로 부서를 장악했다. 그녀의 특기는 숫자 암기이며 파워포인트를 현란하게 사용하는 멀티미디어의 달인이다. 인프라사업과 관련한 모든 숫자를 머릿속에 달달 외우고 다녔다. 총 대신 숫자로 투쟁을 즐기는 여전사. 딜마는 이렇게 연방정부에 데뷔했다. 딜마는 과격한 성격 때문에 다른 장관들과 잇따라 충돌하면서 많은 일화를 만들어냈다. 2004년 브라질전력공사 사장이던 루이스 핀겔리 호자와 회의를 하다 의견대립이 심해지자 갑자기 일어나 특유의 칼칼한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핵물리학 박사인 호자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아무 말 없이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그러곤 사표를 던졌다. 딜마는 공직사회의 욕쟁이로 통했다. 부하들의 원성이 자자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그런 야생마를 멀리서 관찰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룰라였다.

총 대신 숫자로 투쟁 즐기는 여전사
에너지부 장관 시절 딜마는 연방석유공사(Petrobras)가 외국에서 시추선을 구입할 때 입찰 조건에 높은 국산화율을 집어넣도록 요구했다. 석유공사가 반대했음은 물론이다. 룰라는 딜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P-51, P-52 시추선의 국제입찰 때 최소 국산화율이 처음 도입됐다. 폐허 상태였던 브라질 조선업계는 2009년 세계 6위로 올라섰고 4만 개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다.

딜마의 변신은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발단은 2005년 6월 룰라의 평생 동지이자 오른팔이었던 조제 디르세우 수석장관(38개 연방부처를 총괄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낙마한 것이다. 수석장관은 대통령궁에 집무실을 두고 대통령을 보좌해 사실상 한국의 총리 역할을 하는 자리다. 하지만 그가 연방의원들을 매수한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에 비난 여론이 들끓자 룰라는 결국 그를 버려야 했다. 그 자리를 딜마가 맡은 것이다.

딜마를 정부에서 후원해준 사람들은 룰라의 양팔이었던 디르세우와 팔로시 재무부 장관이었다. 하지만 룰라는 팔로시가 아닌 딜마를 수석장관에 임명해 특유의 용인술을 과시했다. 당시 룰라 입장에선 정부의 굵직한 정책과 국책사업을 수석장관에게 맡기고, 자신이 직접 정치를 챙기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대통령궁에 들어간 딜마는 특유의 성격 때문에 많은 일화를 만들어나갔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장관들과도 대놓고 충돌하기 일쑤였다.

2006년 또 한 번의 사건이 발생했다. 룰라의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팔로시 재무장관이 낙마한 것이다. 정적들의 은행계좌를 불법으로 조사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그해 어렵사리 재선에 성공한 룰라는 딜마에게 새로운 인프라 개발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이것이 룰라 정부의 역작인 인프라투자를 통한 성장촉진프로그램(PAC)이다. 딜마는 ‘PAC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PAC 덕에 딜마는 추진력과 부처 장악력, 그리고 거침없는 언변과 배짱을 가진 인물로 언론과 정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PT 내부에선 2007년 하반기부터 딜마를 유력한 차기 후보로 주목했다. 각종 스캔들로 당내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를 찾기 어려워 외부 인사 영입론까지 나오던 판이었다. 2008년 5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타르소 젠로가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며 딜마 때리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반격에 나선 딜마는 당내에서 친위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도 ‘젠로 그룹’을 압박했다. 2008년 연말께 젠로는 결국 대선 경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딜마의 정치력과 리더십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다.

부패·불법으로 탈락한 룰라 후계자감들
그럴 즈음 딜마는 대중 정치인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딜마 개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개조는 2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는 법과 태도·화법 등을 배우고 익혔다. 딜마의 뛰어난 기억력과 논리력은 정부 내에서는 잘 먹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독이 될 수 있었다. 2단계 작업은 겉모습을 고치는 이미지 개조작업이었다.

2008년 9월 대서양 심해저에서 시추한 석유를 처음 선보일 때 룰라 곁에서 딜마는 개조 효과를 발휘했다.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띤 채 “주바르치 광구에서 돌아왔습니다. 노란딱다구리 농장의 닭장에서 석유가 나오더군요”라고 외쳤다. 브라질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몬테이루 로바투의 작품 내용을 빗대 해저 3000m의 심해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것을 바로 이웃 농장에서 뽑아낸 것처럼 말한 것이다. 옆에 서있던 룰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후 딜마는 자신의 모든 연설을 동영상으로 찍어 문제점들을 고쳐나갔다. 대중과 대화할 때 전문용어와 숫자를 대폭 줄이고, 룰라가 즐겨 쓰는 비유법 대화를 늘렸다. 이미지도 확 바꾸었다. 눈 수술을 하고 도수 높은 안경을 벗었다. 얼굴과 눈가의 잔주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목 주변의 주름도 없앴다. 복장도 단순 색깔의 바지정장에서 유행을 따르는 모던하고 여성스러운 복장으로 바꾸었다.

드디어 룰라가 움직였다. 룰라는 2008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PT 수뇌부에 ‘딜마를 후계자로 키우고 싶다’는 결심을 통보했다. 새해 들어선 룰라가 직접 딜마에게 개인교습을 하기 시작했다. 룰라가 가는 곳에는 항상 딜마가 있었다. 룰라의 분신이 된 것이다. 룰라가 연설을 할 때마다 룰라는 정부 업적을 과시하고 후임자가 그것을 더 발전시킬 것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4월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림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9월 초 건강이 회복되자 룰라의 개인교습은 강도를 높여갔다.

올해 2월 20일 딜마는 PT 제4차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PT는 우선 딜마의 정치적 이미지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행정가 업적과 정치가 자질을 결합해야 했다. 심해저 석유개발에 관한 법률과 PAC 2차 계획이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9월 24일에는 연방석유공사를 증시에 상장시켜 660억 달러의 신주 발행에 성공했다. 기업공개(IPO) 사상 최고액을 경신한 것이다. 딜마 후보의 지지도 역시 뜨기 시작했다.

룰라는 11월 중순 서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동행시킬 계획이다. 3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딜마를 국제무대에 띄우기 위한 것이다. 멕시코 칸쿤에서 열릴 유엔환경회의에도 데려간다. 딜마의 극적인 변신 못지않게 딜마를 후계자로 키운 룰라의 선견지명이 놀라울 뿐이다.



조희문
고려대 국제법 석사, 브라질 상파울루대학(USP) 국제법 박사학위. 브라질 상프란시스코대학(USF) 교수와 브라질 최대 로펌인 데마레스트에서 아시아담당 파트너로 활약했다. 현재 국제통상법·중남미법 등을 가르치며 대한상사중재원 상사중재인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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