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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인사관리에 자기 시간의 60%를 써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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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호 24면

박용만 두산 회장

Q.상시적인 구조조정 시대의 인재상은 무엇인가요? 10여 년에 걸친 구조조정에 성공한 두산 사람들만의 DNA가 있나요? 이제 두산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인데 글로벌 기업의 구성원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CEO는 인사 및 인력개발에 시간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나요? 인사관리에서 이른바 스펙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경영구루와의 대화<3> 박용만 두산 회장⑤

A.두산 사람들은 일곱 가지 기질적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기질이 두산의 구조조정을 성공시켰다고 봅니다. 첫째로 우리는 눈높이가 상당히 높습니다. 구조조정 초기 회사를 팔기 시작했을 때 거래 상대방이 코카콜라, 네슬레, 코닥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었습니다. 그쪽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그들의 수준이 우리가 당연히 맞춰야 할 기준처럼 돼버렸죠. 발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높은 눈높이가 지속적으로 우리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됐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불가능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의 전신)을 인수한 후 인사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쳤고 해외 계열사를 사들일 때도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두산에서 “그거 안 될 텐테” 했다가는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셋째로 두산엔 성역이 없습니다. 여러 번 강조했거니와 모든 의사결정이 팩트 베이스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관련 팩트가 깔끔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그 일을 추진한 실무자가 불이익을 당합니다. 냉철하게 팩트 베이스로 보지 않으면 리스크가 커집니다. 리스크는 전체가 분담해야 할 고통이죠. 성역을 무너뜨리는 일은 최고경영자들이 많이 했습니다. 그룹의 간판 기업을 내다 팔았고, 회장이 앉아 있는 빌딩을 가장 먼저 팔았습니다. 선대가 물려준 건 특정 제품이나 특정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건 사업을 일으켜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기업가 정신입니다. 넷째로 선택과 집중입니다. 업종 변경 같은 파격적인 결정과 시도를 하려면 가용자원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도출되면 마치 벌떼처럼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하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려 했으면 지난 10여 년간의 변화를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제때에 중요한 단추를 찾아 눌러야 합니다.
다섯째로 기동성입니다. 전략적인 분석을 토대로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보유한 경영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합니다. 이런 전략경영 프로세스는 해외 계열사들도 못 따라옵니다. 해외 계열사를 인수해 전략경영을 시켜보면 우리와 거의 대학원생과 유치원생 정도의 격차가 납니다. 여섯째로 사람 중심입니다. 사람이 성장해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내고 그에 따라 사업이 성장하면 다시 사람이 성장하는 기회가 만들어지죠. 이 두 개의 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도록 하자는 게 두산의 2G(Groth of People, Groth of Business) 전략입니다. 아이템을 잘 잡은 사업은 해당 아이템이 외면당하면 무너지지만 사람을 잘 잡으면 아이템을 계속 바꾸어가면서 회사가 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화입니다. 한마디로 공정한 화목이죠. 피인수 기업들이 두산과 빨리 융화하는 데 인화라는 경영철학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대우종합기계의 후신)가 두산의 일원이 된 지 십수 년 된 것 같지만 실은 5년밖에 안 됐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구성원은 글로벌 시민이 돼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신의 생각에서 국적을 탈색해야 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늘 옳은 건 아닙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는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고 문화적인 수용성도 떨어집니다.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 단일민족이라는 우리의 자산이 안 좋은 쪽으로 발현된 경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의 소형 건설장비 업체 밥캣을 인수한 후 8개 국어로 번역한 회사 브로슈어, DVD, 선물 등을 포장해 전 세계에 배포했습니다. 그때 우리 스태프 중 한 사람이 한국을 소개하는 좋은 책자를 포함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뭐가 좋은데요?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물었죠. 우리를 이해하면 뭐가 좋죠? 우리를 이해시키려 드는 건 우리 방식대로 하면서 우리를 이해해 달라는 겁니다. 기업에서 중요한 건 목표, 전략, 실행, 성과, 평가 등입니다. 국적이나 언어와 상관없는 것들이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한국적인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보여준 목표 지향성, 저돌성, 근성, 근면성 등입니다.
그런데 ‘인화’는 번역하지 않고 그냥 ‘Inhwa’로 쓰도록 했습니다. 영어로 하면 하모니인데, 두산의 100년 경험이 녹아 있는 인화의 함의를 담기엔 부적합했기 때문입니다. 화목으로 번역되는 하모니는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화목은 혈연·지연·학연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어요. 반면 두산의 인화는 공정한 룰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이렇게 조직을 운영할 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당당할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인화가 이루어집니다. 윗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참고 그래야 화목하다면 그런 화목은 결과적으로 인화를 해치게 마련이죠. 진정한 인화는 진정한 팀워크로 이어지고 좋은 성과를 낳습니다.
CEO는 인사관리(HR)에 자기 시간의 60%를 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게는 못합니다. 최고로 투입했을 때 내 시간의 48%까지 써봤습니다. 물론 인사관리만 잘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죠. CEO로서 사업을 꿰고 있는 건 기본이에요. 사업을 모르고는 인사관리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스펙은 과거의 행적을 통해 미래의 성과를 가늠해 보는 지표 구실을 합니다. 미래의 역량을 쌓기 위해 과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뿐 스펙이 미래의 성과를 담보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스펙을 위한 스펙은 예외고요. 이런 스펙은 말하자면 화장발 같은 거예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다른 조건이 같다면야 기업으로서는 스펙이 더 좋은 사람을 쓰겠죠. 그러나 회사의 문턱을 넘는 순간 스펙의 격차는 거의 무의미해집니다.



기획·정리=이필재
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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