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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용의자 '회원' 관리하듯 감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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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검찰이 사이버 감시망 구축에 나선 것은 새로운 통신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을 범죄 예방 및 수사에 활용해 수사 기법을 다양화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검찰뿐 아니라 다른 수사기관들도 최근 범죄 정보 수집의 주된 수단을 기존 전화 등 오프라인에서 인터넷 등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인터넷 등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라 수사 기법도 첨단화할 필요성이 커져서다. 하지만 자칫 네티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공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 사이버 생활을 엿볼 수 있다=대검의 '인터넷 추적시스템 프로젝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범죄 용의자가 사이버 공간에서 하는 거의 모든 일을 '회원 관리'하듯 감시할 수 있다. H사 컨소시엄 측은 친북사이트에 들어가 적화통일을 주장하는 의견을 제시한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 사이트에 추적시스템이 걸려 있으면 그는 접속하는 순간 '발자국 코드'를 묻히게 된다. 이 코드는 그가 돌아다니는 사이트마다 자취를 남긴다.

수사기관은 일정 기간 그의 거취를 추적 점검하다가 위법 사실에 대한 확증을 얻으면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본격적인 24시간 감시에 나선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사생활 추적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꼭 필요한 경우라도 반드시 법원의 영장 발급 등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온라인 감시가 첨단화된다=범죄 혐의자 등에 대한 초보적인 온라인 감시체제(관련 업체로부터 특정인의 ID 등 신상자료를 넘겨받은 뒤 이를 통해 위치와 내용 추적)는 이미 수사에 적용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지난해 국회에 보고한 '수사기관의 PC통신 감청자료'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의 2003년 e-메일 감청 건수는 214건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에 대검이 구축할 인터넷 추적시스템은 기존 온라인 감시체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수사요원이 사무실에서 앉아서도 마음만 먹으면 한번 클릭하는 것으로 특정인이 사이버 공간에서 벌이는 모든 활동을 인공위성 위치추적하듯 감시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특히 '역추적 기능'을 이용하면 특정 네티즌의 과거 e-메일 내용 등 행적도 고스란히 검색할 수 있다.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MS)사가 지난해 보안을 대폭 강화해 내놓은 운영 체제인 '서비스팩 2(SP2)'의 방어벽도 뚫을 수 있다. SP2가 나온 이후 수사기관은 초보적인 인터넷 추적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 첨단 수사기법은 필요악?=수사기관 관계자들은 유.무선 인터넷 등 첨단 IT의 발달로 범죄 혐의자에 대한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는다. 따라서 첨단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모 국가기관이 대북 범죄 혐의자 수사를 위해 미국에서 e-메일 감청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지난해 들었다"며 "이 기관의 수사요원은 당시 첨단 장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아예 공론화할 생각도 하더라"고 전했다.

H사 컨소시엄 관계자는 "여러 수사기관이 대검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고, 장비 도입을 적극 검토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안보나 범죄 예방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도록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사회적인 합의도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원호.윤창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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