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재희 전 장관 '운동권 딸' IT정책 공무원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1980년대 운동권 여대생이 20여년 만에 국가 공무원으로 변신했다. 정보통신부가 14일 개방직 공무원으로 임용한 남영숙(44.사진) 박사.

그가 국내외 최고급 우수 인재들과 치열한 공모 경쟁을 통해 입성한 첫 공직은 정통부의 국제협력국 지역협력과장.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연구개발센터를 유치하고, 국내 IT벤처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업무다. 남 박사는 "예전부터 공무원이 돼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통부는 그를 여성 국제정책전문가로 소개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개발학 박사 출신으로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근무한 이력을 높이 산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서슬이 시퍼렇던 5공 때인 80년대 초 대학 재학시절(고려대 경제과) 학생운동으로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이른바 '386 세대 운동권'이었다. 그래서 대학 선후배들 사이에선 '동지'로 통한다.

남 박사는 "대학 서클에서 의협심이 분기탱천한 선후배들과 어울리다 우연히 시위 배후조종자로 몰렸을 뿐"이라며 겸손해 했다. 그는 "요즘 386이 뜨는 것은 바뀐 시대에 그들이 필요해서다"라면서도 "그들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남 박사는 학생운동 시절 튀는 '출신성분'과 '결혼인맥'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당시 운동권의 주적이었던 여당(민정당) 국회의원 남재희(전 노동부 장관.현 호남대 객원교수)씨가 부친이다. 대학 졸업 직후(85년)엔 재야 핵심운동가인 예춘호(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공동이사장)씨의 며느리가 됐다.

남 박사는 "결혼식은 중국집에서 양가 어른만 참석한 채 약식으로 치렀고, 도망치듯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며 그때 분위기를 전했다. 그와 학생운동을 함께했던 대학 선배이자 남편인 예종영(45.현 고려대 정외과 연구교수)씨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자신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못다한 학업(경제학 석사, 국제개발학 박사)을 마쳤다. 그 후 95~2003년 ILO와 OECD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96년 OECD 회원국이 된 직후 파리본부의 첫 한국인 정규직원이 됐다"고 회상했다.

남 박사는 2003년 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중국팀장을 제안하며 불러주었을 때 고액연봉이 보장된 OECD 종신 계약직을 마다하고 귀국했다. 한국을 제대로 알려 국제사회 위상을 높이려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대학시절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세웠던 공무원, 그것도 최첨단 IT 국제정책 입안자가 됐다. 남 박사는 요즘 친정이나 시댁 분위기를 묻자 배시시 웃었다. 설날 연휴 양가를 찾아 세배를 했는데, 부친과 시아버지가 덕담을 건넸다고 했다. "두 분 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원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