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이 당대표자회가 열린 28일 평양시 개선문 주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선노동당 총비서 재추대 를 축하하는 춤을 추고 있다. 개선문은 김일성 생일 60주년인 1972년 건립됐다. [AP=연합뉴스]
김정일은 뒤이어 군부 숙청을 주도했다. 69년 김창봉 민족보위상, 허봉학 대남사업총국장 등 상당수의 군 고위 관계자들을 ‘좌경 모험주의’로 몰아 숙청했다. 68년 1월 청와대 습격사건 등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대부분 항일 빨치산 출신이었다. 하지만 당시 군부의 입김이 커지면서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이자 정리에 나선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정일은 군에 대한 당적 통제를 강화했다. 당 조직지도부를 통해서다.
김정일은 70년 선전선동부 부부장, 73년 조직지도부장 겸 선전선동부장, 73년 9월 당 조직 및 선전 담당 비서를 거쳐 74년 후계자로 확정됐다. 후계자가 된 이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90년), 최고사령관(91년), 국방위원장(93년)에 오르면서 군권을 장악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인민군 대장이 현재까지 확인된 첫 공식 직위다. 군에서 권력 승계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에게는 이번에 당직도 부여됐을 가능성이 크다. 당 군사부장을 맡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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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되기까지 권력을 쟁취한 측면이 강하다. 당 지도원→과장→부부장→부장→비서를 거치면서 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반면 김정은은 경험이 얕다. ‘만들어진 후계자’의 인상이 짙다. 김정일은 최현·오진우·전문섭 등 빨치산 1세대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후계자가 됐다. 하지만 김정은은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 등 가족들에게 의지하는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 현재의 북한 정치·경제 상황은 과거와 딴판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건재하고 북한 경제가 괜찮았던 시점에 후계자가 됐다. 반면 김정은은 김정일의 건강이 온전치 못하고, 경제난도 극심한 상황에서 후계자의 길을 걷게 됐다. 국제사회에서 북한 급변사태론이 부상하고, 중국의 대북 접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정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