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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도난차 국내유통 첫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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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에서 도난 신고된 독일의 벤츠 차량이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돼 유통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수입차 업계에선 외국의 도난 차량이 국내로 반입돼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으나,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기는 처음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벤츠 S600 차량에 대해 부산 세관이 발급한 수입신고필증(左)과 일본 도쿄운수지국장 명의로 발행된 등록사항등 증명서. 이 차량의 차대번호는 동일했으나 수입신고필증에는 '신차'(New Car)로 돼 있는 반면 일본 서류에는 '도난'으로 기재돼 있다. 수입가(8448만3360원)는 정상 가격보다 훨씬 낮았다.

13일 관세청과 일본의 차량등록사업소 등에 따르면 일본에서 도난 신고된 벤츠 차량 3대가 우리나라의 수입차 업체인 서울 강남의 F사를 통해 시중에 판매됐다. 문제의 도난 차량은 벤츠의 최고급 모델인 S600, S55 AMG, S500으로 국내에서 2억원대가 넘는 소비자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 일본에선 도난, 국내에선 새 차로 둔갑=본지는 벤츠 제조사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독일 본사에서 F사가 시동키의 재발급을 의뢰한 11대의 차량에 대해 도난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취재에 들어갔다. 그러나 벤츠 본사 측은 차량 도난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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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본지는 문제 차량의 차대번호를 입수, 일본에서 차량등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도쿄 운수지국에 도난 여부를 문의했다. 그 결과 이들 중 3대는 도난 차량으로 등록돼 있었다.

도난 신고된 S600과 S55 AMG는 일본에 있는 한 미국계 보험사의 소유로 돼 있으며, F사가 일본의 수출업체를 통해 지난해 4월 수입했다. 차량 소유자인 미국계 보험사는 "차량을 도난당한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명의를 회사 이름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 소유의 S500은 2003년 12월 우리나라에 반입됐다.

부산세관에서 교부한 수입신고필증에는 이들 차량이 모두 '신차(New Car)'로 표기돼 있으며, 수입 가격은 S600 8400만원, S55 AMG 7300만원, S500 5400만원으로 기재됐다. 이에 대해 벤츠의 한국법인 관계자는 "정상적인 수입가에 비해 30% 이상 싼 가격"이라며 "주행거리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중고차를 새 차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수입신고필증에는 S600의 연식이 2004년, S55 AMG는 2003년으로 표기돼 있지만 본지가 독일 본사에 확인한 결과 이들 차량은 2003년과 2002년에 각각 제조됐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유럽 등에서 활동하는 전문 차량절도 조직이 일본의 중간 유통망을 통해 국내로 들여온 것 같다"며 "일본 세관과 줄이 닿는 전문조직이 차량 수출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 시동키 재발급이 발단=이들 차량의 도난 사실은 F사가 독일의 한국인 자동차 딜러 B씨에게 차량 시동키의 재발급을 의뢰하면서 불거졌다.

벤츠의 시동키는 차량마다 다른 전자제어장치를 감지해 작동하기 때문에 독일 본사에서만 복사할 수 있다. 본사에서는 시동키에 기록돼 있는 차대번호를 토대로 실소유주가 확인됐을 경우에만 키를 재발급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 본사는 재발급을 요청한 차량들이 일본에서 도난된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B씨는 "본사 측은 도난 신고된 3대의 차량 외에도 F사가 한국에서 판매한 차량 가운데 시동키 재발급을 의뢰한 또 다른 8대에 대해서도 도난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F사 관계자는 "도난 차량 여부는 모르겠지만 법적인 하자 없이 정상적으로 수입한 차량들"이라며 "일본의 고리대금업체가 대출을 해주고 담보로 잡은 새 차를 정상가보다 싸게 수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F사는 이들 차량을 정상 가격보다 20% 정도 싼값에 시중에 판매했다고 한다. 국내 판매와 관련, F사 측은 문제의 차량을 "새 차로 판매했다"고 주장했다가 나중엔 "중고차로 팔았다"고 번복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에서 도난당한 중고차를 새 차라고 속여 내국인에게 판매했을 경우 사기죄 등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용.임장혁 기자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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