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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임권택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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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짧지 않은 내 영화인생에 최고의 명예이자 행복이다. 또 한국 영화계에 최고의 선물이 됐다."

임권택 감독의 목소리는 감격에 겨운 듯 다소 떨렸다. 12일 오후 9시30분(현지 시각)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 필름 팔라스트 극장에 마련된 명예황금곰상 시상식장. 짙은 청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단상에 오른 임 감독은 수상 직후 상기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1982년 '만다라'로 베를린 영화제에 처음 참가한 이래 '길소뜸''서편제''태백산맥' 등을 잇달아 출품했다"면서 "수상 여부를 '혹시나' 하며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지만 늘 '역시나'였다. 그래서 화도 났다"고 털어놓자 관객들의 폭소가 터졌다.

임 감독은 "한국인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신으로 긴 세월 노력한 것이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개막 사흘째를 맞은 12일 제55회 베를린 영화제(베를리날레)의 관심은 임권택 감독에게 모아졌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임 감독은 세계 영화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영화인에게 주어지는 명예황금곰상을 수상한 첫 아시아인이다. 지금까지 알랭 들롱.소피아 로렌.커크 더글러스.잔 모로.더스틴 호프먼.올리버 스톤 등 스타 배우.감독들이 이 상을 받았다.

이날 '춘향뎐' 등 임감독의 작품 7편을 상영하는 특별회고전이 시작한 것도 주목됐다. 영화제 측이 주로 타계한 감독들의 작품을 회고전으로 준비해온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인 행사인 것이다.

임 감독의 이날 일정은 분주했다. 오전에는 외신기자들과 잇따라 개별 인터뷰를 가졌고, 오후 3시15분에는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세계 언론들은 임감독의 영화인생과 100번째 차기작품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오후 6시30분에는 임감독의 수상을 축하하는 리셉션도 열렸다.

임 감독에 대한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대접은 융숭했다. 시상식에서 디터 코쉴릭 베를리날레 운영위원장은 "임권택 감독은 한국 영화의 뿌리"라고 소개하면서 "명감독인 그가 아니면 누가 이 상을 받겠는가"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울리히 그레고어 큐레이터도 "임 감독은 영화계의 거장인 존 포드나 장 르노아르 감독에 비유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일제 식민지, 분단, 과거와 현재가 상호 관계를 이루는 임 감독의 작품세계는 심층적이고 다양한 측면의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한국 영화가 낳은 최고의 감독"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독일 dpa 통신은 "한국 영화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임권택 감독이 박수갈채 속에 명예황금곰상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간 베를리너 차이퉁은 "임 감독은 국제영화의 언어형식을 알고 있다"면서 "베를리날레가 한국의 위대한 연대기 작가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 존경을 표했다"고 전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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