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보유 공식선언] '핵 보유 선언' 배경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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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의 핵 보유 선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3회 생일(2월 16일)을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김 위원장은 북핵과 6자회담 불참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가운데 생일상을 받게 됐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외무성 성명은 김 위원장의 최종 재가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성명의 행간에 북핵 문제와 북.미관계를 풀어가는 김 위원장의 구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이란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베이징(北京)에 6자회담 테이블을 마련한 중국의 입장까지 곤혹스럽게 하는 등의 외교적 부담을 떠안은 채 벼랑 끝 전술로 미국에 맞서려는 김정일의 속내는 무엇일까.

첫째는 핵 문제를 정면돌파하지 않고서는 머지않아 체제 유지에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엿보인다. "또다시 4년(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을 지금처럼 보낼 수 없다"는 성명 대목에선 더 이상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휘둘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드러난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차기 6자회담에서 '이미 개발한 핵을 문제 삼지 말라'고 못박아 핵 보유 국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향후 핵 개발에 대해서만 협상의 여지를 주겠다는 뜻일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중국과의 관계다. 이번 성명은 중국의 대북 특사 파견이 임박한 시점에 나왔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미국 입장으로 돌아서는 것에 대해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더 이상 중국의 체면치레를 위해 회담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란 얘기다.

셋째는 북한 내부의 복잡한 사정도 한몫했을 수 있다. 피폐한 경제상황과 사회적 이완에 따른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해 핵 보유 선언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과시하려 한 측면도 있다는 풀이다.

정부 당국자는 "19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새해 들어 군대를 모든 것에 우선시한다는 선군(先軍) 혁명 바람을 거세게 일으키고 있다. 외무성 성명의 "강력한 힘만이 정의를 지킨다"는 대목은 핵 보유에 대한 강한 집착이 감지된다. 김 위원장의 다음 한 수가 어떤 것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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