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 또다시 벼랑끝 전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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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6자회담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천명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는 서방의 관측을 완전히 뒤엎는 반응이다. 북핵을 둘러싼 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보여 매우 우려된다.

물론 이번 성명은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일 수 있다. 회담에 복귀한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정해놓고도 보다 더 얻어내겠다는 차원에서 강경입장을 천명한 것인지 현재로선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성명 내용을 분석해 보면 미국의 요구에 그냥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배어 있어 예사롭지 않다. "부시 2기 정부는 대통령 취임연설과 연두교서, 라이스 국무장관의 국회 인준 청문회를 통해 우리와는 절대 공존하지 않겠다는 것을 정책화했다"고 단언한 것 등이 그렇다.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제조.보유' 선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김정일 체제를 인정한다'는 가시적 입장 표명이 없는 한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강경기조가 풍겨난다.

북한이 이런 식으로 국제사회의 일치된 요구에 역행하는 길을 택한다면 그 끝은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묘혈을 파는 행위나 다름없다. 한.미.일을 포함해 어느 국가도 북한의 이런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자신들 국익의 핵심인 '한반도의 안정'을 손상시키는 사태를 좌시하겠는가. 중국도 마찬가지다. 1991년 남북한 유엔 가입 당시 중국이 북한 입장에 어긋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을 상기해 보라.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김정일 체제 보장은 핵 포기뿐이다. 북한은 그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하고 즉각 6자회담에 복귀하길 촉구한다.

정부도 기존 대북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면 북한이 우리 의도대로 나올 것'이라는 환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미국과의 공조에서도 한 점의 허점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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