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명절인데 이런 날벼락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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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날벼락이래요?”

23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한우리아파트 6동 앞 주차장. 부러진 나뭇가지와 콘크리트, 흙더미가 수북이 쌓여 주차장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무너진 옹벽 위에 세워진 5층짜리 빌라는 지하 벽면을 훤히 드러낸 채 금방이라도 아파트 쪽으로 무너질 듯 위태롭다. 21일 집중호우로 이 아파트 주차장 뒤편의 높이 2.5m 옹벽 30m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일이다. 중장비가 투입된 가운데 계양구청 직원과 119구조대, 의무경찰 등 50여 명이 삽을 들고 복구작업에 나섰다.

이매옥(72) 할머니는 “그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떨린다”며 “비가 많이 오길래 큰아들한테 ‘조심해서 오라’고 전화를 하고 끊었는데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밖을 보니 이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놀란 이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밖으로 나와보니 주차장에서 튕겨져 나온 차들이 아파트 1층 현관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추석이고 뭐고 집이 무너질 것 같아서 집에 오는 아들, 딸, 손자 다 돌려보내고 대피소에서 잤다”고 말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옹벽 아래 주차된 차량 9대가 크게 부서졌다. 2차 붕괴를 우려한 이 아파트 50가구와 옹벽 위의 빌라 13가구 주민 100여 명은 인근 경인여대 지하 1층 강당으로 대피했다.

서울 서부 지역의 피해도 컸다. 서울 신월1동 유옥순(54)씨는 “우리에겐 추석이 없어졌다. 명절 첫날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반지하 단칸방인 유씨의 집 앞 골목에는 가재 도구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흙탕물에 젖은 이불과 약병·리모컨·전화기가 나뒹굴었다. 유씨의 단칸방은 이날도 발목까지 물이 잠겼다. 양수기가 유씨의 방에서 골목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유씨는 “추석 하루 종일 바가지로 물을 퍼냈는데도 그대로다. 근처 찜질방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대책 촉구=이명박 대통령은 기습 호우가 쏟아진 21일 밤 정진석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수해 가구당 100만원씩 지급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재민들이 당장 장판과 도배를 다시 해야 하고 차례상도 마련해야 할 테니 수해가 확인된 경우 현장에서 100만원씩을 지급하도록 대책을 강구하라”고 말했다. 22일엔 직접 신월1동 수해현장을 찾아 위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3일 이번 집중호우로 전국 1만4018가구가 물에 잠기고, 낙뢰로 2706가구가 정전됐으며, 4655가구 1만191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낚시하던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한나라당 구상찬(서울 강서갑), 김용태(서울 양천을) 의원과 민주당 노현송 강서구청장, 이제학 양천구청장은 23일 국회에서 합동기자회견을 열어 “서울 강서구 화곡동·공항동과 양천구 신월동·신정동 등 4개 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요구했다.

최모란·박정언·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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