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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9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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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형 나두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해버리자 우석이가 내 머리통을 쥐어 박았다.

- 속박을 견디고 나야 자유가 생기지. 세속이 그런 거다. 너 시간만 끄는 거야.

- 학교 때려치울 거야.

한발 더 나아가 결심하니까 어쩐지 후련했다.

이튿날 돈암동 전차 종점에서 만나기로 택이와 약속하고 헤어졌다. 밤 늦게 집에 들어가 잠든 것처럼 불을 끄고 새벽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당으로 나가 창고에서 배낭이며 취사도구며 산 살림들을 정리해 두었고 부엌으로 들어가 쌀이며 반찬 등속을 꾸려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남길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 보세요

저는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학교에 다닐 자신이 없습니다. 매일 시험 성적에 매달려서 어느 것이 맞는 답안인지 연필 굴려 표시나 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런 학교를 그만 다니기로 작정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어디 절간에라도 다녀올 셈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밖에서 또 편지 올리겠습니다.

편지를 잘 접어서 그 위에 다시 '어머니께' 라고 써서 책상 위에 얹어 두었다. 그리고는 가지고 갈 책들을 골라냈다. 그때에 여러번 읽었던 두툼한 '불경', 사서삼경과 노자 장자를 한데 묶은 어느 출판사의 두툼한 전집물인 '동양의 지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 라이프 편집의 사진집 '인간', 카프카, 쌩텍쥐뻬리, 말로, 헤세, 포크너, 샐린저, 뵐, 아쿠다가와, 이용악, 채만식, 손창섭 등등.

책만으로도 배낭은 보통 때보다 두어배는 더 무거웠다. 나는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배낭을 지고 집을 나섰다. 책갈피에 끼워 두었던 비상금 얼마가 있었고 시계를 차고 나왔으니 급하면 팔아치울 셈이었다.

택이가 보아 두었다는 곳은 수유리 화계사 뒤편 골짜기였다. 당시에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미아리에 이르면 서울 시내버스의 종점이 거기까지였고 그 아래로는 국도 양편이 무인지경의 논밭이거나 소나무 숲이었다. 오른쪽 멀리 불암산과 수락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바로 정릉에서부터 뒤로는 불광동 자하문 밖에 이어진 북한산 자락이 이어져 울타리 같은 능선이 계속되다가 삐죽 솟아 이른바 삼각산을 이루고 다시 북으로 계속 흘러서 도봉과 오봉에 앞 뒤로 이어지던 것이다. 수유리 화계사는 거세게 흘러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 옆으로 오솔길이 있을 뿐 인적이 드물었다. 우리는 화계사 대웅전 뒤편 등성이로 올라가 다른쪽 계곡이 나오는 마지막 언덕 위에 이르렀다. 언덕 위에는 몇 덩어리의 큰 바위가 겹쳐 있었고 위에 올라 앉으니 북한산과 도봉의 연봉이 한 눈에 보이고 짙푸른 솔밭이 내려다 보였으며 화계사의 기와지붕도 보였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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