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친서민’과 ‘저출산·고령화’ 왜 함께 못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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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런데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왜 그럴까. 이번 계획에 포함된 저출산 관련 구체적인 사업들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한 배경이겠지만 사회의 ‘동반성장’이라는 가치의 부재(不在)가 보다 근본적인 이유인 듯하다. 이른바 우리 사회의 ‘양극화된 구조’에 대한 사전 인식이 미흡했기 때문에 사업의 질적인 성과(outcome)에 대한 고려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정책 구상인 ‘해밀턴 프로젝트’의 교훈을 갑자기 떠올리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당시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시장주의 정책 기조가 국가의 기본적 책임을 외면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하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가적 책임을 강조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경제적 성장과 복지의 병행을 주요한 정책 수립의 기조로 내세웠던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국가 발전이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전략과제, 특히 현실과 미래를 아우르는 다양한 정부 정책의 기조가 바로 양극화 문제와 궤를 같이하면서 비로소 경제적 성장과 복지가 양립하는 ‘탈이념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미국 사회 내에서 고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최근 들어 ‘친서민’ 코드를 강조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저출산·고령화 정책과 같은 사회 ‘복지성’ 정책은 오히려 서민과 부유층의 구조적 차이에 대한 고려를 담고 있지 못한 듯하다. 대표적으로 이번 2차 기본계획에 포함된 저출산 극복 대책 중 하나인 ‘육아 휴직 급여’의 확대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육아 휴직자에게는 임금 수준이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한 달에 50만원을 지급한다. 하지만 최근 2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휴직 전 통상 임금의 40%, 최대 100만원 한도 내에서 육아 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자녀의 양육을 위해 휴직을 하게 된 부모에게 돌아가는 물리적인 지원 금액이 2배 정도 상승한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부의 지원이 결과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부부에게 더 많은 지원액이 돌아가도록 하고, 소득 수준이 낮거나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돼 휴직조차 하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 이른바 ‘서민’ 부모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지원액이 돌아가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양극화가 복지의 양극화로까지 전이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정부의 새로운 대책을 일반화해서 예단해서도 안 된다는 전문가적 소견도 있고, 또 기존에 일률적으로 지급되었던 동일한 지원액이 출산율 진전을 위해 별다른 효과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다만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가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의 출발점이나 키워드를 무엇으로 놓고 있는지,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나눌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뭔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있는가 등을 사후적으로 되물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목전에 와 있는 현실이라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전제를 통해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양극화된 구조하에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의 해법 찾기를 해야 하고, 특히 사교육비 부담이 학교 수업료보다 10배나 많아 사교육 수혜나 부담 능력의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정부가 이해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정연정 배재대학교 교수·공공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