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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음란물 없는 무공해 사이버 세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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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래피티 아티스트 크리스 엘리스(예명 데이즈·오른쪽)가 미래 사이버 세상을 그린 작품 앞에서 박유현 ‘인폴루션 제로’ 대표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강정현 기자]

“인터넷에 흘러 넘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인폴루션 제로’와 ‘그래피티 아트’는 일맥상통합니다.”

미국의 유명 그래피티(공공 구조물·건축물 대상의 낙서 예술) 아티스트 크리스 엘리스(48)는 박유현(35) 인폴루션 제로 대표가 펼치는 인터넷 정화 캠페인에 참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폴루션이란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폴루션(pollution)의 합성어로서 정보화의 역기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폴루션 제로는 사이버상에 넘치는 왜곡된 악플이나 폭력적이고 음란한 유해 정보들을 제거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던 박유현(35) 대표가 2008년 미국 거주 당시 시작한 운동으로, 지금은 안세재단 산하에 본부를 꾸렸다.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 뉴욕 뒷골목에서 반항적 청소년들이 스프레이나 페인트로 벽이나 기차·전철 등에 그린 그림에서 시작됐다. 그 뒤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현대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았고, 최근엔 광고·디자인 등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데이즈’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엘리스는 열여섯 살이던 76년 뉴욕의 한 기차에 자신의 이름을 그려넣는 것으로 그래피티 세계에 뛰어들었다. 83년까지 벽이나 기차에 그림을 그리면서 그래피티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가 처음 판매했던 작품은 동료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 미국 그래피티 아트의 아트의 전설로 통하는 초기 개척자)와 공동으로 제작한 콜라주(여러가지 재료를 섞어서 붙이는 기법) 냉장고였다. 이 작품은 80년 200달러에 맨해튼의 한 클럽에 팔렸다.

“기차나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시에도 물론 불법이었습니다. 경찰의 눈을 피해 몰래 그림을 그려야 했죠. 하지만 막연한 반항심 때문에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뭔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기쁨이 그림을 그리게 했던 이유입니다. 이 도시 속에 존재하는 나를 표현하고 싶었죠.”

그는 단순한 낙서와 창조적 예술품의 사이에는 한가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배경에 분노가 깔려있느냐 아니냐다.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건 창조가 아닌 낙서에 불과합니다. 예술이란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창조적인 작업입니다.”

다음달 16일까지 서울 논현동 ‘워터게이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신의 첫 전시회(‘데이즈 개인전’) 참석차 지난 8일 한국에 온 그는 방한 당일부터 꼬박 사흘간 가로 4m, 세로 3m의 대형 스프레이 페인트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미래의 사이버 세상을 그린 작품이었다. 한가운데에 웹서핑을 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은 지난 11일 국립과천과학관 중앙홀에 전시됐다. 그는 작업 마무리를 당일 그곳을 찾은 20여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했다. 인폴루션 제로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이벤트였다.

“미국에서도 악플 등 사이버 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잘 쓰면 너무나 유용한 도구지만 잘못 쓰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

2개월 전 첫 아들을 낳은 그는 인폴루션 제로 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박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북돋고 격려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역할”이라는 게 평소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박 대표는 “악플로 남을 괴롭히거나 거짓 정보를 유포시킨 아이들에게 왜 그랬느냐고 하면 ‘심심해서, 재미있어서’라고들 한다”며 “그런 행동이 사회에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를 알리고, 스스로 고쳐나가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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