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국 신세대 노동자의 기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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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리샤오쥐안(李曉娟). 얼굴에 소녀 티가 가시지 않은 19세 여성이다. 중국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의 자동차부품업체인 난하이(南海)혼다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 전형적인 ‘90후 세대(90년대 이후 출생)’ 노동자다.

지극히 평범한 그가 지난 6월 초 중국을 놀라게 했다. 이 회사 노동자 대표 자격으로 사측과 공회(工會·노동조합), 그리고 전 사회를 향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노사분규가 격렬하던 때였다. 노동자 이익을 대변해야 할 공회 쪽 사람들이 파업 중인 노동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하단에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또렷이 적어 넣었다. 대단한 용기였다.

리샤오쥐안은 치밀했다. 베이징의 한 노동 전문 교수를 법률고문으로 끌어들였고, 파업과 협상의 완급을 조정하는 면모도 보였다. 100명에서 시작됐던 파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 노동자가 참여할 만큼 조직화됐다. 마스크가 등장했고 파업 상황이 시시각각 휴대전화로 외부에 알려졌다. 그 조직력에 사측은 손을 들었다. 임금은 34%나 올랐다. 언론에서는 ‘노동자의 승리’라는 표현이 나왔다.

후폭풍은 컸다. 파업이 이어졌고, 전국적으로 임금이 올랐다.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노동자들로 하여금 ‘계급의식’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만든 나라다. 그 당을 만든 주체는 노동자와 농민이었다. 중국이 정책 최우선 순위를 노동자와 농민에게 둔다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도시근로자)이 거대 산업군단으로 등장하면서 ‘노동자’ 개념이 모호해졌다. 공장에서 일하는 그들은 분명 노동자 계급에 속했다. 그러나 신분은 농촌 후코우(戶口·주민등록)를 가진 농민일 뿐이다. 도시 주민이 누리는 각종 혜택도 받지 못한다.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민도 아닌 어정쩡한 계급이다. 2억3000만 명의 농민공들이 ‘계급 실어증’에 빠졌던 것이다.

그들은 굴종을 강요받았다. 공회도 그들을 대변하지 못했다. 이 같은 무기력이 선전(深?)의 대만계 부품회사인 폭스콘 근로자 12명을 자살로 몰아넣은 원인이다. 그러나 리샤오쥐안이 이끌었던 난하이혼다 근로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죽음보다는 저항을 선택했고, 승리했다. 노동 운동의 흐름을 바꾸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신세대 노동자(新生代工人)의 특징은 ‘3고(高)1저(低)’로 요약된다. 그들은 부모 세대 농민공과는 달리 학력이 높고, 직업의 기대감이 높아 존중받기를 원한다. 소비 성향도 높다. 반면 소황제로 큰 탓에 참을성은 떨어진다. 중국의 세계공장은 이들 80후, 90후 세대들이 채워가고 있다. 그들이 노동계급 의식으로 무장한다면 산업현장에는 격렬한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중국은 노동자들의 ‘정치화’를 주시하고 세계는 인플레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2억3000만 중국 농민공들은 지난 30년 세계 경제질서를 뒤흔들어 놓은 주역이었다. 세계 경제는 ‘리샤오쥐안’으로 상징되는 신세대 노동자의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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