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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천국이되 어딘가 아픈 곳, 소주의 ‘쓰레기 같은 힘’으로 잊어야 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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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영광씨의 새 시집 『아픈 천국』에는 사회비판적 시가 많이 실려 있다. 정작 이씨는 “내 손을 통과하지 않은 뭔가가 보이는 작품이 좋다”고 했다. 의도하지 않은 효과에 끌린다는 것이다. [강정현 기자]

시는 다른 어떤 글쓰기보다 언어의 선택과 배열에 민감한 장르일 게다. 말의 선택과 활용에 따라 시인의 세계관이나 그때그때의 정서, 세상 변화의 기척, 혹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회경제적 진실 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시인 이영광(45)씨가 3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창비)은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표제시에서 이씨가 밝힌 자신의 세계관, 즉 ‘통증의 세계관’이 특유의 강렬한 시어와 그 배열을 통해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 눈에 세상은 천국이되 어딘가 아픈 곳이다. 그는 어떤 통증과 함께 세상을 보는 모양이다. 이런 시선을 드러내는 이씨의 말 운용은 가히 ‘격정(激情)의 수사학’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우선 이씨는 달을 보는 시선부터 삐딱하다. 첫 머리에 실린 짧은 시 ‘반달’에서 시인은 반달을 ‘구정물에 뜬 밥알 같은/하늘의 눈’으로 표현한다.

강렬한 사회비판적 시각을 담은 ‘유령3’은 말들의 전시장 같다. 이씨는 ‘朝刊(조간)은 訃音(부음) 같다’고 한다. 끊임 없이 사람 죽어나가는 소식을 전해서다. 신문 속 세상에서 살인자는 누군가를 ‘여전히 拉致中(납치중)이고/暴行中(폭행중)이고/鎭壓中(진압중)이다’. 자연히 사람은 ‘計劃的(계획적)으로/卽興的(즉흥적)으로/合法的(합법적)으로’, 또 ‘戰鬪的(전투적)으로/錯亂的(착란적)으로/窮極的(궁극적)으로’ 죽어간다. 부사의 반복 사용으로 사회비판의 강도가 세진다.

‘포장마차’는 또 어떤가. 이씨에게 포장마차는 맑은 소주 한 잔의 힘에 기대 세상살이 진정성의 순도를 가다듬거나, 고단함 혹은 설움을 달래는 장소가 아니다. ‘사는 것보다/살려고 마음먹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강력하게 주정하기 위해’ 망하지 않는 곳이다. 이곳을 드나드는 서민들에게 삶은 ‘콩자루에서 쏟아져 나오는 콩알들을 놓치는 손끝처럼’ ‘대략, 난감’하다.

한편 소주는 ‘슬픈 독’이다. ‘들어가 태우면 어디선가 덜덜덜/쓰레기 같은 힘이 솟구치는,/불의 잔’이다. 하필 소주의 술기운을 이씨는 ‘쓰레기 같은 힘’으로 표현한다.

이씨는 원래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었다. 세상이 그를 변하게 한 것일까. 그는 “(이번 시집에서) 내 시의 빛깔이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념이 강한 편이라서 인지, 더 거르고 가라 앉혀야 할 것 같은 지점에서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강한 사회 비판이 일정 부분 자신의 체질 탓이라는 것이다.

그런 체질이 사랑시에서는 사랑을 사생결단식, 위태로운 실존적 선택으로 보는 시행으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파멸을 선택하지 못한 자의 삶은 허망하고 쓸쓸할 것이다. ‘울어야 할 때 울고 타야 할 때 타는 떳떳한 파산/나는 불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없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후보작이기도 했던 ‘사랑의 미안’은 사랑에 눈감은 비겁한 남자의 속울음이 절절하게 표현돼 있다. 시인들 사이에서 절창으로 꼽힌 시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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