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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경쟁력이다] 가덕·거제의 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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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겨울철 미식가들이 즐겨찾는 가덕.거제 대구가 올 겨울 풍어를 이루면서 경남 진해만 일대 어촌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대구 판매장과 대구 탕.횟집마다 가덕.거제 대구의 맛을 보러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어민 전용돈씨가 진해만 앞바다에서 잡은 대구를 내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3년 전 겨울만 하더라도 전체 어획량이 1만마리도 채 안되던 가덕대구가 올해는 1월말 현재 9만3000여마리나 잡혔다. 귀하고 비싼 탓에 '금대구'라고도 불리던 이 대구가 이처럼 많이 잡히는 이유는 20년 동안 계속돼 온 인공수정란 방류사업 덕이다. 바로 대구의 '모천회귀'본능을 이용한 것이다.

◆ 회귀본능 이용한 인공방류 사업= 진해만에서 부화한 가덕.거제 대구는 동해에서 2~3년간 성장한 뒤 여름엔 북태평양 베링해까지 올라갔다가 겨울철 산란을 위해 진해만으로 돌아온다. 3년 만에 진해만으로 돌아올 땐 60㎝가량까지 성장한다.

가덕 대구는 8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 산란하러 오는 어미 대구를 마구 잡은 데다 1987년 낙동강 하구둑 준공으로 생태계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거제수협서 경매된 대구가 1987년 1만8018마리를 정점으로 94년 74마리까지 감소했다. 어민들은 "대구 씨가 말랐다"며 한숨지었다. 어획량이 줄자 생각해낸 것이 인공 수정란 방류사업이었다. 진해만의 겨울철 수온(섭씨 5~9도)이 대구알 부화에 적당하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대구의 '모천회귀'를 활용한 것이다.

거제수협.경남도.거제시는 86년 1월 어미 대구 1500여 마리를 구입, 2억4000만개의 알을 인공 수정시켜 바다에 뿌렸다. 처음이어서 알과 정액을 어떤 비율로 섞어야 수정이 잘 되는지 몰랐다. 92년엔 3326만원을 들이고도 88마리만 잡았을 뿐이다.

수정란 방류 효과는 2001년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 294마리에 그쳤으나 2001년 1297마리, 지난해 3만1873마리까지 늘었다. 인공수정난 방류사업이 점차 효과를 보이자 부산시와 강서구도 올해 수정란 방류 사업에 동참했다. 경남도는 지난해 처음으로 대구 새끼(7㎝)1만 마리를 방류했다. 수정란보다 어린새끼 생존율(1%)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자 부산시도 어린새끼 방류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 신명난 어민=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항 전용돈(46)씨는 지난 1일 마을 앞바다에 설치해 둔 그물 4곳에서 200여마리의 대구를 잡았다. 이날 잡은 대구는 지난해 겨울철 내내 잡은 것보다 많은 양이었다. 그는 이날 800여 만원을 손에 쥐었다. 전순탁(61)외포어촌계장은 "한산한 겨울철 어촌이 대구 덕에 잔치 분위기"라며 "집집마다 윤택해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마을이 활기가 넘친다"고 전했다.

인근 대계마을과 부산 가덕도,경남 진해 용원 어민들도 올 겨울 지난해보다 두세배 많은 대구를 잡았다. 외포수협 위판장앞에는 부산.마산.진주 등에서 온 활어운반 차량과 자가용 승용차 100여대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진해시 용원 의창수협과 속천수협 위판장에도 주민들이 몰리기는 마찬가지다.

대구 판매장 주변 횟집이나 식당도 '대구특수'를 누리고 있다. 외포항 앞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윤선자(42.여)씨는 "평일 하루 평균 100명 정도 찾는다"며 "부산서 배편으로 주문하는 단골도 수십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 늘어난 어민소득=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 말까지 거제수협(5만5500마리)과 진해수협(2만1962마리), 의창수협(1만5775마리) 에서 팔린 대구는 9만3237마리. 지난해 겨울철 3만1873마리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수협을 통하지 않고 거래됐거나 이달 중순까지 잡힐 대구까지 감안하면 올 겨울 진해만에서 잡히는 대구는 10만 마리를 훨씬 넘을 것으로 수산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지난 1월 한달 거제수협을 통해 경매된 큰 대구(60㎝이상) 가격은 마리당 8만원 선. 대구가 잡히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말엔 12만원을 넘기도 했다.

거제수협 고혁 계장은 "거제수협을 통해 팔리는 대구의 평균 경매가격을 4만원으로 계산하더라도 올 겨울 진해만에서 잡힌 대구의 도매 가격은 45억원을 넘을 것"이라며 "주변 식당 매출 등을 합치면 진해만 대구의 부가가치는 100억원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계장은 "풍어 탓에 대구값이 지난해보다 평균 30% 정도 내렸지만 어민 76명의 소득은 가구당 평균 4000만원 이상으로 지난해의 2000만원보다 두배가량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가 많이 잡히면서 거제를 찾는 관광객이 늘자 거제시는 대구 관광상품화에 나섰다. 시를 상징하는 고기(市魚)를 대구로 지정, 지난달 7일 선포식을 했다. 거제시 최화영(56)수산행정계장은 "한일어업협정 이후 어장이 줄어든 데다 지난해 여름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보면서 시름에 잠긴 어촌에 겨울철 대구 풍어가 어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며 "대구를 거제의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지역경제에 활력소로 삼겠다"고 말했다.

거제=강진권 기자 <jkkang@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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