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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종목은 없다, 비인기 선수가 있을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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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호 14면

올해 2월에 우리 대학의 곳곳에 걸렸던 모태범·이상화·이승훈 등 밴쿠버 겨울올림픽 영웅들의 개선 환영 플래카드를 걷은 지 며칠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힘든 훈련을 시작했다. 그들이 밴쿠버에서 준 감동은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그 감동은 단지 우리 한국체육대만의 것이 아니고 온 국민이 함께 공유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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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보면 빙상은 엄연히 우리나라의 비인기 종목에 속한다. 그런데 밴쿠버 영웅들을 보면서 정말 비인기 종목이 따로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우리는 생각지도 않았던 종목에서 스포츠 영웅이 탄생되는 모습을 보아왔다. 바로 훌륭한 선수와 지도자의 피나는 노력이 인기종목이란 단어를 탄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타나는 자기 회의, 그리고 소위 잘나가는 종목의 돈 많이 버는 동료에 대한 시샘에서 나타나는 설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사실 비인기 종목이란 따로 구분돼 있는 것이 아니다. 모태범·이상화·이승훈, 그리고 김연아가 있기 전까지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는 비인기 종목이었다. 스케이트 종목에서 쇼트트랙을 제외하면 국제대회에 출전했다가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오늘의 밴쿠버 영웅들은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떨어진 선수들처럼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노력의 결실이며 따라서 그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제 피겨 종목은 일약 인기종목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만약 김연아가 나타나기 전에 아이스쇼를 열었다면 관중이 얼마나 왔을까. 스포츠 경기 분야에서 성공해 신분의 수직상승을 경험하는 선수 및 지도자라고 해도 항상 스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은 지속적인 노력으로만 지켜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종목이든 시즌이 있고,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도 시즌이 끝나면 인기 종목의 권좌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의 손길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열리는 채널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소위 비인기 종목을 자처하는 체육인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즌을 앞두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본격화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더운 여름을 힘겹게 이겨낸 선수들이 찬바람이 살짝 부는 이때쯤이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인 중간 평가를 하고, 인기 종목들이 플레이오프 등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광경을 지켜보며 집중력을 잃고 허탈해져 대세를 그르치기 딱 좋다. 그러기에 마음을 다시 잡아야 할 시기다.

사실 비인기 종목 콤플렉스는 사회인에게도 있다. 많은 연봉을 받는 인기 직종, 잘나가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와 친지를 보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콤플렉스의 상당수가 자신감과 자존심의 결여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콤플렉스란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자신만의 종목과 시즌이 있다.

만약 지금 비인기 종목으로서 위기감이나 설움이 느껴진다면, 나의 진정한 시즌이 언제인지 그리고 언제가 될지를 헤아려보고, 더욱 힘 있게 그 시즌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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