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은 ‘특채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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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는 특채(특별채용) 백화점이다. 시장 친인척은 기본이고 국회의원 조카, 시장 운전사 부인, 의회 의장 딸, 시의원 처제, 심지어 재단 이사의 채권자 아들까지 특채됐다. 시가 8일부터 감사 중인데 대상자 모두 특혜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채용 과정을 보면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한 의혹이 있다. 시 감사실 관계자는 “만약 인사 비리가 드러나면 경중을 따져 신분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부천시장의 운전기사 부인은 2008년 4월 부천문화재단에 입사했다. 재단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치렀다. 면접위원은 시장이 임명한 재단 대표와 인사 실무책임자, 부서장 등 3명이었다. 서류전형과 면접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당시 면접위원들은 질문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같이 지원한 3명의 일반 지원자를 따돌리고 합격했다. 재단은 대체로 신규 인력이 필요하거나 결원이 생길 때 직원을 특별채용한다. 한 부천시의원은 “재단의 채용규정을 살펴보니 사실상 면접으로 채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9일 본지 취재 결과 부천문화재단의 경우 전체 165명의 직원 중 46명이 전 시장의 친인척이나 측근의 자제, 시의원의 자제 등으로 확인됐다. 4명 중 1명꼴이다. 이들은 문화정책실과 행정지원팀, 문화·교육사업팀 등 핵심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앞서 재단은 2007년 전문성과 거리가 먼 특정 정당 출신 인사들을 채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해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박물관·문화사업·시설관리팀장과 위탁기관인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팀장 등을 채용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이거나 한나라당에서 추천한 인사였다. 당시 부천지역 문화계와 시민단체에서 시장이 한나라당 챙기기 인사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단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채용했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부천시설관리공단은 올 5월 3일 상용직 직원 8명을 채용했다. 지역신문 기자와 경찰 아내 등이 포함된 이들은 무기 계약직으로 사무보조나 시설물 청소, 공단이 운영하는 주차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만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다. 연봉은 1200만원대지만 정년이 보장되고 수당도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시는 이들을 서류전형이나 면접조차 없이 뽑았다. 공단의 채용규정은 서류전형과 논술시험을 거쳐 면접 과정을 거치도록 돼 있다. 시 조사결과 공단은 전체 150여 명의 직원 중 24명이 공무원 친인척인것으로 나타났다. 인사 관계자는 “지난해 행정 인턴을 했거나 시간제 근무를 했던 사람이어서 별도로 서류를 접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공단에는 특별한 채용규정도 있다. 2006년 신설된 것인데 ‘이사장의 추천으로 직권으로 특별채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부천시 한 공무원은 “시 산하기관의 경우 주변의 감시를 피해 고위층들이 친인척을 입사시키기 쉬운 편인데 추천 조항까지 신설한 것은 사실상 무자격자도 채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남시에서도 청소년육성재단과 문화재단, 시설관리공단, 산업진흥재단 등에 특채된 전직 공무원과 친인척들이 당초 알려진 20여 명보다 배 많은 42명으로 확인됐다. 오산시의 경우도 전 시장의 친인척과 산하단체장의 친인척 6명이 시 산하기관 등에 특채된 것이 추가로 확인됐다. 성남시 한 공무원은 “채용 과정에서 응시자가 시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고위층이나 시 간부 친인척이라고 하면 굳이 외압을 넣지 않더라도 해당 기관에서 알아서 높은 점수를 줘 특채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외교부 장관 딸 특채 파문이 큰 일처럼 보이지만 지방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천=유길용·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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