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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뿌리’ 하곡학은 퇴계·율곡학과 함께 조선 3대 학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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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3일 개원하는 하곡학 연구원의 초대 원장을 맡은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의 실질적 원류로서 ‘하곡학’을 재정립 하겠다고 했다. [김경빈 기자]

한국 양명학(주자학을 비판하며 지행합일의 실천을 강조한 유학의 한 흐름)의 개창자로 알려진 하곡 정제두(1649∼1736). 그의 아호를 딴 ‘하곡학(霞谷學) 연구원’이 13일 강화도(인천 강화읍 남산리 숭조회관)에서 문을 연다. ‘하곡학파’의 끊어진 명맥을 새로 잇는 자리다. 실학사상의 원류로서 하곡 사상을 새롭게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강화도 곳곳에는 하곡의 유적이 있다. 올해는 하곡이 강화로 터를 옮겨 하곡학의 기틀을 마련한지 300년이 된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하곡의 계보는 이어졌다. 그의 학맥을 이은 위당 정인보는 ‘하곡계’라는 표현을 쓰며 하곡학파의 존재를 알렸다. 위당이 6·25전쟁 때 납북되면서 맥이 끊겼다.

초대 연구원장을 맡은 정인재(69) 서강대 명예교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원장은 “‘강화학파’라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제 하곡학파로 제대로 부르면서 조선 사상사를 재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학파 대신 하곡학파로 명명하는 이유는.

“퇴계학을 안동학(도산서원이 있는 안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곡학 역시 강화학이라 해선 안 된다. 강화학이라 하면 강화지방의 역사·문물을 연구하는 지방학으로 오해된다. 하곡학은 학맥이 분명했던 철학사상이다. 퇴계학파·율곡학파와 함께 조선의 3대 학파로서 재정립돼야 한다.”

-하곡학의 특징을 요약하면.

“조선 후기 실학의 실질적인 발상지였다. 하곡의 직계 제자들은 ‘실심실학(實心實學)’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실심실학이 바로 하곡학의 핵심이다. 해방 이후 우리 학계에서 ‘실학’은 경세치용·이용후생의 실리적 측면만 주목 받았다. 하곡학으로 실학의 실체를 다시 파악해야 한다. 실학에서 학파로서 실제 존재했던 것은 하곡학파였다.”

-‘실심실학’이란 표현이 새롭다.

“‘실심’이란 자기를 속이지 않는 참된 마음을 가리킨다. 실학이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부단히 변화하는 현실에서 실천하는 학문을 말한다. 실심실학은 자기의 사적인 실리만을 챙기면서 도덕을 빠트린 ‘실용실학’과 차별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맹목적 명분에 빠진 이상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이다. 하곡학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실심을 강조하여 우리의 역사와 한글을 연구하는 실학의 원류가 되었다.”

-학맥은 어떻게 되나.

“하곡 이전에 양명학을 연구한 남언경·장유·최명길·이유 등을 하곡학의 연원으로 꼽을 수 있다. 하곡학파를 형성한 초기 인물로는 이광명·이광사·이광신·심육 등이 있다. 그 다음 세대로는 이영익·이충익·신대우·정동유·이면백 등이며, 또 그 다음 세대의 이시원·이지원·이건창·이건승·이건방을 거쳐 정인보에 이르렀다.”

-연구원을 강화에 세운 이유는.

“강화는 하곡의 실심실학의 고향이다. 하곡의 제자들은 강화에 하곡서원을 세워 줄 것을 영조에게 건의하였으나 두 번 모두 거절당했다. 그 후 하곡의 정신을 이어갈 서원이 없어, 신대우의 경우 한 평 남짓한 방 시렁에 책을 두고 어른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경전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어렵게 계승된 하곡학의 정신을 이어 갈 현대판 서원으로 하곡 기념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연구원은 13일 개원식 직후 오후 7시부터 하곡이 즐겨 읽던 왕양명의 『전습록』 강독을 시작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무료. 02-2168-4466.

글=배영대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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