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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굶기고 때리고 … 죽음의 공포 157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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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루하루 언제 살해될지 모른다는 엄청난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해적들에게 석방을 위한 몸값 지급을 약속해 무사히 풀려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57일째(7일 기준)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돼 있는 삼호드림호(사진) 선장 김성규씨가 7일 새벽 한국 언론사에 위성전화를 걸어와 이같이 호소했다.


그는 “피랍 직후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내의 한 벌과 담요 한 장만으로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적들의 살해위협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밥도 주지 않고 잠도 안 재운 채 이틀 동안 폭행당하기도 했으며 돈이 오지 않으면 선원들을 차례차례 살해하겠다고 위협해 선원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선장은 선사인 삼호해운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해적 측이 4일 석방금액을 제시하고 지급확인을 해줄 것을 요구하는 문서를 선사에 보냈으나 선사 측은 답변하지 않고 있다.”며 “선원들과 배를 되찾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선사 측에서 답이 없자 해적들의 위협과 협박 강도가 더 높아졌다. 선원 가족이 석방금액 일부를 부담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선원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선원들의 가족들도 현지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알려왔다. 기관장 정현권씨의 딸은 “아빠가 휴대전화로 ‘식량이 동나 하루 1~2끼를 흙이 섞인 부실한 식사로 간신히 때우고 있으며 해적이 휘두른 총기에 머리를 다쳤고, 선원들은 양치질이나 목욕도 하지 못한 채 속옷 차림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왔다”라고 전했다.

한 선원은 친구에게 e-메일을 보내 현지 실상을 전했다. e-메일에는 “석방 협상에 진전이 없자 며칠 전 해적들이 사흘간 선장을 잠도 안 재우고 폭행했다. 식사도 주지 않으면서 선원들을 모두 죽이겠다며 한 줄로 세워놓고 기관총을 들이밀었다”라고 전했다. 또 일부 해적이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술에 만취한 채 난동을 부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 상황이라고 전했다.

선원 가족들에 따르면 해적 측은 최근 삼호드림호 선사인 삼호해운에 ‘우리가 요구한 석방금액을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조치를 취하겠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삼호해운측은 “선원의 안전에 관한 사항이므로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선원가족들은 “이번에 높은 석방금액을 주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정부 측이 승인해주지 않아 선사 측이 지급약속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인 선원 5명과 필리핀인 19명이 탄 삼호드림호는 31만9360t급 원유 운반선으로 4월4일 이라크에서 미국 루이지애나로 항해하던 중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 소말리아 중북부 항구도시 호비요 연안에 억류돼 있다 (피랍 선원들의 사진은 안전을 위해 싣지 않습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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