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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한마디에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후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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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대통령이 공정성을 강조하자 정책 현장에선 엉뚱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이 그중 하나다. 중소기업청은 지난달 중소기업기본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중소기업 보호막을 걷어내고 중소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중소기업이라고 아무나 주먹구구식으로 보호하지 않고, 알짜와 혁신형 중소기업을 골라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경영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점에서 중기 정책의 획기적 개선책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공정성이 화두(話頭)가 되고 중소기업 단체들이 반발하면서 중기청의 입장이 확 바뀌고 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기청은 당초의 개정안을 수정해, 걷어내겠다던 보호막과 지원을 상당 부분 되살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개악(改惡)이다. 개정안은 과거 수십 년의 중소기업정책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었다. 국민경제에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그토록 오랫동안, 막대한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영세한 중소기업이 너무 많다. 지난 10년간 종업원 수 20명 미만의 중소기업들은 10~20% 늘었지만 100명이 넘는 중소기업은 오히려 10% 이상 줄었다. 지원액도 엄청났다. 지난 15년간 정부 예산은 4~5배 늘어난 데 반해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무려 80배나 늘었다.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1000여 개가 넘고, 지원액도 20조원이 넘는다. 이렇게 된 데는 중소기업을 과보호한 정책 탓이 컸다. 중소기업이면 무조건 지원하겠다는 온정(溫情)주의로 일관했다. 따라서 한계 기업은 퇴출시키고 우량 중소기업은 육성·발전시키는 선택과 집중으로 전환하겠다는 지난달의 법 개정안은 분명히 옳았다.

중기청이 이 정책을 다시 바꾸겠다는 건 대통령의 진의(眞意)와도 어긋난다고 본다. 대통령은 공정성을 강조하면서도 중소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려면 중소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고, 커갈 수 있는 중소기업을 집중 지원할 때 가능한 것이다. 중기청은 법 개정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