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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치매 잡는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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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2008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유병률 조사에서 2010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1명 중 한 명이 치매로 추정됐다. 인구 수로는 약 48만4000명에 이르고, 이들을 부양하는 가족까지 함께 생각한다면 치매와 전쟁 중인 국민은 이미 200만 명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우리 사회에 치매라는 병을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은 듯싶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러다 치매가 되는 거 아냐’라는 농담이 자주 오가고 있고, 노인들 사이에선 절대 걸리지 말아야 할 병으로 암보다 치매가 첫째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성 질환이 그러하듯 치매 또한 조기에 발견해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경우 악화를 효과적으로 지연시키고,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상당 부분 경감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 초기부터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은 치매 환자들은 5년 후 독립적인 생활 능력을 상실해 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되는 비율이 10% 수준이나 조기에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은 60%에 이른다.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다른 어떤 질환들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치매 환자와 가족의 절반 이상은 아직도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아 보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2008년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가족들 중에서 자기 가족이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50%에 이르렀다. 2009년도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치매 환자 10명 중 4명만 의사의 진료를 받았고, 그중 절반인 2명이 치매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우리 치매 환자들이 조기에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데는 전문적인 치매 진료기관의 부족과 높은 진단·치료비용이 한몫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무료 치매 조기 검진사업을 2010년부터 전국 모든 보건소로 확대 시행키로 했다. 또 돈이 없어 치매 진단을 받고도 치료제를 복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환자의 경제 수준과 치매의 중증도에 따라 전국 보건소에서 치매 약제비도 지원토록 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는 가정에서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서비스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치매 환자들의 조기 진단과 치료를 가로막고 있는 유일한 장벽은 국민 상당수가 아직 떨치지 못하고 있는 ‘치매는 진단해도 해 줄 것이 없다’는 근거 없는 무력감뿐이다. 국가가 시행 중인 지원책을 잘 활용해 치매 환자들이 더 이상 고통 속에 방치되지 않고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